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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15 14:04
2004년 유기서원자 여름 공동실습 후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615   추천 : 0  
유기서원자 공동실습 후기

섬. 섬. 섬으로

박 마오로 수사

유기 서원 공동 실습은 한 마디로 실미도식 극기 훈련 이었습니다.

수도 생활은 ‘하느님을 찾는 삶’이라고 했던 가요! 그런데 유기 서원 공동실습을 첫 경험 해 보는 저로서는 하느님을 찾는 일이 이다지도 힘들고 험난한지... 다시 기억조차 하기 싫지만 공동체에서 유기 서원 공동실습의 진상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2004년도 유기 서원 공동 실습 진행일은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 4일간 총 13명이 강원도 양양에 있는 예수 고난회에서 관리하는 콘도식 별장에 숙소로 정하고 그 주변으로 낙산 해수욕장과 그 악명 높은 설(으-)악산 등반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첫 날은 강원도로 차 2대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오후 반나절 동안 해수욕장 나들이와 저녁 식사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 덧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첫 날 저녁 식사는 석쇠에 구운 삼겹살 잔치로 형제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화기애매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물론 이 분위기를 돋구기 위한 신경 자극제인 참 소주도 곁들어서 말입니다. 이런 저런 미주알 고주알 넋두리와 함께 밤이 깊어갔고 다음 날을 위하여 조촐하게 소주 1박스만 비우고 잔치는 파장했습니다.

둘째 날은 아침 일찍 아침기도와 미사를 드린 뒤 설악산 등반하기 위하여 아침 식사를 서둘러 먹고 차를 타고 약 20분정도 이동하여 오색약수 매표소에 도착하여 오전 8시쯤 등반하여 12시쯤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체력적인 열세와 호흡곤란이 심해서 뒤 따라 가는 중이었는데 어느 산악인과 마주치면서 나를 보더니 힘들고 안쓰럽게 보였는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말 해 주더군요. 저는 그 말을 믿고 1시간쯤 올라갔을까 또 다른 산악인이 나를 보고는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또 1시간정도 올라가니 그 때서야 정상이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에 보면 그 두 산악인이 한 말은 아마도 산에서 말하는 3대 거짓말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대체 그 조금만 가면 된다는 기준이 몇 분 몇 시간의 거리를 말하는 건지 의문 나는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정상에 도착해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대청봉 기념비에서 사진 촬영 후 낮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 날 낮 기도는 노래로 기도를 받쳤는데 남자들만 모여서 특유한 운율로 노래하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행인들이 한 번씩 쳐다보고 가더군요. 그 사람들의 속마음은 어떠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하나의 간접 선교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편 이제 산을 내려가야 하는데 다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곤욕이었지만 그렇다고 산에 계속 있을 수 없기에 이동을 하였는데 일부 형제들과 내려가다가 한 수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길을 잘못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이라 말인가! 다시 거슬러 400m를 올라가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길을 안내했던 그 수사님이 원망스럽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사님들 먼저 가시라고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이 때 청지원자 때 관장님이셨던 인 끌레멘스 신부님께서 머리에 정으로 새기듯 말씀하신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kenosis' (자기비움)이란 말이 머리에서 스쳐갔습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다시 올라가서 비선대로 하산하였습니다. 내려오는 도중 산중에 경치는 정말로 사람이 다니기에 험한 산이라서 그런지 천상 낙원에 들어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상 낙원도 좋지만 도저히 다리 근육이 풀려서 더 이상 걷지를 못해 계곡에 가서 발을 담갔는데 발이 동상 걸릴 것 같이 얼얼해 지면서 온 몸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이 때만큼은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게 느껴지면서 이것이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산에서 무사히 전부 내려왔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셋째 날은 전 날 등산한 것이 너무 무리한 것 같아 오전은 자유롭게 휴식을 한 뒤 오후에 해수욕장으로 갔는데 가는 도중 우리 형제들의 걷는 모습이 정말로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전 날 등산의 여파로 저도 포함해서 어디 수술한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는 모습이었거든요. 그런데 몇몇 형제는 형제의 아픔이 곧 나의 즐거움인가 아픈 형제 옆에 와서 장난치는 수사님도 있더군요. 이렇게 엉금엉금 기어가 해수욕장에 가서 수영으로 몸도 풀고 축구도 하면서 이 날도 잘 보내고 마지막 날 수도원에 돌아오면서 안동에 하회 마을을 들렀는데 하회탈을 보니 수도원에 어느 수사님이 생각이 나더군요.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이제는 간단하게 시원한 동동주나 한 사발 사 주나 했더니 우리 고명한 총무 수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냥 가자고 하더군요.
이 총무 수사님의 변명인즉 우리 수도원에 3대 악덕 기업주 중에 한 분이신 수사님께서 바로 가자고 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총무 수사님도 장래 악덕 기업주에 유망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알콩 달콩 삼박사일을 무사히 보내고 왜관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귀원하고 보니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생각해보니 이번 휴가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이 기회를 계기로 그 가운데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되어 뜻 깊은 휴가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 휴가는 제발 섬. 섬. 섬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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