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소문 별곡’을 열며

사라지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깁니다. 사라져 없어진 것도 있지만 사라진 것 사이에서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도 있고, 변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삶의 파문으로, 역사의 무늬로 현존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대학로에는 교육과 문화와 관련된 근현대 문화유산이 많습니다. 혜화동 로터리 부근의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과, 동성중고등학교에서 종로를 향해 가면 가톨릭청소년회관이 있습니다. 대학로의 중심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은 서울대학교 본관 터였습니다. 이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본부도 있습니다. 모두 나지막한 낙산에 깃들어 살고 있습니다. 낙산을 따라 올라가면 낙산공원이 있고, 시내가 보이는 산책로가 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부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본부까지의 땅에 근현대적 교육과 문화와 연관된 역사적 유산이 생기게 된 것은 바로 그 곳에 성 베네딕도회 서울 백동 수도원이 있었던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백여 년 전 대한제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때인 1909년, 동소문 부근 도성 안 백동에 세워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수도생활과 교육활동을 통해 근대문화의 씨를 뿌렸습니다. 근대 사범교육과 실업교육,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연구, 식물, 양봉에 대한 연구 외에도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모토에서 뿌려진 씨앗들은 백동(혜화동) 옛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복개되어 볼 수 없지만 대학로 길과 낙산 쪽 길을 따라 시내가 흘렀습니다. 대학로 마로니에도 그 시냇물을 빨아들여 아름드리가 되었지요. 그 시내에 수도원의 낙산 언덕에서 흘러나온 실개천도 합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의 보이지 않는 젖줄들이었습니다.

‘동소문 별곡’ 특별 전시회는 백동 수도원이 자리 잡았던 바로 그 곳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 유산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의 백동에서 시작하여 북한의 덕원과, 만주의 연길로 이어졌다가 다시 경북의 왜관에까지 계속되는 한국 베네딕도회의 역사적 맥락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옛 등걸에 새순이 나듯이 바로 그 첫나무가 백동 수도원이었습니다.   

우리 수도원에는 백동에 수도원이 있을 때 그곳 수도원 성당에서 미사복사를 하고, 동성학교를 졸업한 후 덕원 수도원에 입회해 현재의 왜관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계신 101세 된 수사님이 계십니다. 또한 백동 수도원 100주년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는 가톨릭 대학교 성신교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은 수도형제도 있으며, 종로와 을지로를 가로질러 장충동에 수도원 분원도 있습니다. 동소문 별곡은 베네딕도회에게 역사인 동시에 현실입니다. 

백동 수도원이 있던 혜화동에서 대학로에 이르는 장소에 추억을 가지고 있거나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계신 분들에게 ‘동소문 별곡’이 지금 여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좋은 전시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