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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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19 18:29
시몬 아빠스님, 성서신학 오리게네스 (참고)예수님 예언의 적중
 글쓴이 :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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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예언의 적중, 성전파괴)

예수님께서 서기 33년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후, 팔레스타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33년이 지난 서기 66(황제 네로 Nero, 12),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 1차 유대-로마전쟁이었다. 이 반란은 유대인과 로마인들 간의 종교적 긴장에서 시작되었고, 7년간 계속되었다. 서기 70년에는 예루살렘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고, 헤롯이 건설한 2성전은 모두 불타고 파괴되었다. 오늘날 통곡의 벽(Wailing Wall)’ 이라고 부르는 성전 외부 서쪽 벽 일부만 남았다. 서기 73년 마지막으로 남은 마싸다가 함락되었고,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유대인들이 노예로 잡혀 갔다.

  성경의 기록,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 걸어가시는 데 제자들이 다가와 성전 건물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마태 24, 1-2) 그 말씀대로 되었다.

(출처 First JewishRoman War,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Jewish%E2%80%93Roman_War)

 

(랍비 유대교)

성전이 불타고 파괴됨으로서, 유대교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랍비(유대교 선생)들은 얌니야(Jamnia)’에 유대교 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다. 얌니아는 오늘날 야브네(Yavne)’이며, 지중해 연안 텔아비브(Tel Aviv)’ 부근에 있다. 예루살렘에 있던 최고회의 산헤드린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가 발전하게 되었다. ‘랍비 유대교란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글로 쓰인 모세오경(written Torah)’ 뿐만 아니라, 구두로 전해진 모세오경(oral Torah)’도 받았구두로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랍비들의 담화(談話)가 기록되기 시작했고, 4세기 내지 5세기에는 탈무드(Talmud)’로 발전되었다. 탈무드에는 모세를 통하여 구두로 전해졌다는 법률(oral law)에 대한 세부적인 토론과 견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탈무드는 랍비 유대교의 중심이 되었고, 유대인 법률과 유대교 신학의 근본이 되었으며, 유대인 문화와 사고방식, 희망, 그리고 일상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이로서 유대인들은 성전 없이, 이방인 속에서 유대교와 유대문화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Rabbinic Juda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Rabbinic_Judaism ; Talmud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almud)

 

(예수님 예고의 적중, 예루살렘 멸망)

성전이 파괴된 후, 키토스(Kitos)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115 - 117). 그 후 서기 132시몬 바르 코크바(Simon Bar Kokhba)’가 스스로 메시아라고 자칭하면서 군중을 선동하며,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바르 코크바 반란이라고 하고, ‘3차 유대-로마 전쟁이라고도 한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영어 하드리안 Hadrian)은 제국전역에서 거대한 규모로 군대를 조직하고, 136년 반란을 완전히 진압하였다. 이 반란으로 1차 반란보다 유대인들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유대인 58만명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포로가 된 수많은 유대인들은 노예로 팔려갔고, 요새화된 마을 50개와 일반 마을 985개가 파괴되었고, 폐허가 되었다. 로마는 군인 4천명이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하드리아누스는 유대인의 민족주의를 근절시키려고 하였다. 유대인 학자들을 처형하고, 유대교 법률인 토라(Torah, 모세오경)를 금지하고, ‘주피터(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유대인 두루마기 성경을 불태워버렸다. ‘유대(Judea)’라는 이름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기 위하여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바꾸고, ‘예루살렘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고, 로마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유대인들을 모두 추방하고, 1년 중 단 하루, 티샤바브(Tisha B’Av)’ 날에만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티샤바브란 유대 역사에서 가장 슬픈 사건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는 날이다. 이 날은 솔로몬이 세운 1성전과 헤롯이 세운 2성전이 파괴된 슬픔을 기억하며, 전례를 한다. 또 속죄행위로서 25시간 금식하고, 목욕과 세탁하지 않고, 크림이나 오일을 몸에 바르지 않고, 가죽신발을 신지 않는다. 우리 달력으로 7월말 또는 8월초에 해당한다.

   성경의 기록, 어린 나귀를 타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 그 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축대를 쌓은 다음,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9, 41-44)."   또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생략)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루카 21, 20-24) 그 말씀대로 되었다.

(출처 Bar Kokhba revolt,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Bar_Kokhba_revolt Hadrian, https://en.wikipedia.org/wiki/Hadrian ; Tisha B’Av,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isha_B%27Av)

 

(아퀼라)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 도시를 그리스 스타일로 재건하려고 했다. 그의 친척인 아퀼라(Aquila of Sinope)’재건 감독자로 임명했다. 아퀼라는 시노페(Sinope), 오늘날 터키 흑해연안도시 시높(Sinop)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유대교로 개종하고 당시 유명한 랍비에게 수학하였다. 그리고 유대교를 위하여 히브리어 구약을 문자대로 직역하여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 이것이 아퀼라 역본이다. 그런데 번역하면서 히브리어로 쓰인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언된 부분을 변조하거나 흐리게 바꾸려고 하였다. 이 부분은 오늘날 가톨릭 성경에도 일부 남아있다. 오리게네스는 아퀼라 역본을 후일 헥사플라를 통하여 비교, 검토하였다.

(출처 Hadria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adrian ; Aquila of Sinop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Aquila_of_Sinope) ; 캐런 좁스, 모세 실바, “70인역 성경으로의 초대김구원 옮김, 기독교 문서선교회, 2012, 5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