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실패작이 아니다. <요한 20, 19-31>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 다시 살아서 나타나셔도 패잔병처럼 적들이 무서워 모두 문을 잠가놓고 숨어 있던 곳을 찾아오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인사말과 죄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참 평화로 이끌기 위해 성령을 주시며 죄를 풀고 맺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여기는 단순히 고백 성사의 권한을 주셨다는 좁은 해석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보편적 권한입니다. 이 권한의 사용은 정의와 자비가 일치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일단 여기서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뵙고 눈물을 흘리고 땅을 치고 울었지만, 주님은 의젓하게 살아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풀고 맺는 권한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야 할 권한이며 의무입니다. 원수 관계를 풀고 맺는 것은 우선 개인 차원에서 시작되고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형벌이 정의롭지 못하면 풀어져야 하고, 정의로우면 맺어집니다. 그래도 자비심으로 풀어주는 너그러운 마음은 십자가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저는 수천 번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십자가로 죄를 풀어주었습니다. 제가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풀어주시고 풀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살아가려면 맺고 풀고 하는 정의와 자비의 행위가 반복되는 중 평화를 체험하고 행복해집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한은 누구를 억눌러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며 자비롭게 풀어주는 능력도 갖추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의 시작은 서로 용서하는 것으로 가능합니다. 내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풀어줄 수 있어도 평화를 잃은 정신은 용서보다 더 죄를 파고들며 망할 때까지 끌고 갑니다. 이유는 당당하지만, 신적 자세는 아닙니다.

오늘날 선거 결과를 놓고 우파들은 “실패다. 폭망했다. 슬프다. 도망가자.” 하지만 저는 반대의 생각입니다. 역사를 보면 다 망한 나라가 일어나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하느님이 보우하사 해방이 되었고, 인민 공화국으로 만들려고 6.25사변이 일어나도 지금의 경상도 일부까지 점령당해 내일이면 전쟁이 끝날 것같이 될 뻔했어도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서 적들을 3.8선 이북으로 쫓아내어 70여 년을 자유 시장 경제 안에서 상업이 발달하여 세계 10위권에 속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더 비참한 경지까지 가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민족은 하느님의 힘으로 단단히 준비된 민족입니다. 이번 사정은 십자가로 생각하면 부활을 기다리는 준비과정입니다. 평화를 잃지 맙시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처럼 유에서 유를 만드는 좋은 조건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을 품고 기다려야 합니다. 봄이 와도 보릿고개란 말은 없고 모든 것이 지나가는 코로나 19뿐입니다. 이것도 지나갈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주님이 “나 비록 처참하게 십자가에 죽었지만 이렇게 살아서 너희에게 평화를 주듯이 너희도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오늘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평화의 길을 여는 희망의 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한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