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낫게 여기지 말라

André Borias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르띠노라는 은수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쇠사슬로 자기 몸을 바위에 묶어 두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마르띠노는 베네딕도 성인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베네딕도 성인은 어떤 사람을 통하여 마르띠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주님의 참된 제자라면 차라리 너 자신을 그리스도께 묶어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그리스도께 대한 이러한 '자기 고정'(Sich-Festmachen)은 베네딕도 성인의 삶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베네딕도 성인이 쓴 규칙서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그 규칙서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을 따를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아무 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않는'(규칙 5,2) 사람이 참된 수도승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무것도 수도승보다 더 낫게 여기지 않았기에 수도승은 이런 그리스도께 대한 응답으로 아무 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낫게 여기지 않는다(규칙 4,21; 72,11 참조).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특징은 깊은 경외심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당시 지배적이던 아리아니즘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고트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단지 피조물로 보는 아리우스 이단을 관철시키려고 했다. 베네딕도는 이에 대항하여 과감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세상의 통치자이며 참된 왕이시기에 수도승은 그에게 봉사하며 그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규칙 머리말 3: 61,10 참조), 베네딕도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렸다. 즉,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드러내는 '예수'라는 이름을 한 번도 자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도 바울로처럼 오직 예수의 지상생활의 중심적인 사건, 즉 성부께 대한 아들로서 그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드러내는 수난과 부활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인류역사에서 하나의 독특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항상 살아 계신 분이다. 그분은 인류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그분 안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수도원 어디에나 현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도록 불린 수도승은 주님과 관계를 맺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 제자를 일생 동안, 특히 복음을 통하여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참된 영적 스승이시다. 그분은 신구약성서 안에서, 시간_기도나 성서 독서를 할 때 제자에게 말을 건네신다. 수도승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전에 먼저 그분의 말씀을 경청한다. 수도원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아빠스는 수도승에게 말씀을 전달한다. 아빠스는 성서에 근거한 가르침을 통하여, 그리고 자신의 모범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해 준다. 아빠스의 형제들은 마치 책을 보고 어떤 것을 아는 것처럼 아빠스가 사는 것을 보고 주님의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어야 한다(규칙 2,4; 64,9 참조).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수도승을 가르치신다. 그분은 수도승 ․이 본받아야 할 유일하고 탁월한 모범을 보여 주신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요한 6,38; 규칙 5,13; 7,32 참조),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이러한 순명을 실천하셨다. 이순명 안에서 성부와 모든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이 성취된 것이다. 이러한 순명은 부활로 완성된다. 수도승은 이 부활에 이미 동참하며, 부활은 그의 수도생활을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비가 수도승생활의 순서를 결정하게 된다. 수도승의 하루 일과, 즉 시간 기도, 성서 독서, 개인적 수행 생활, 공동소임, 휴게, 시사 이 모든 것은 빠스카 축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승생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규칙 머리말 50 참조).

그래서 수도승생활의 기초는 수도승 각자에 대한 주님의 부드러운 사랑이다. 이 사랑은 무한하고 진솔한 사랑으로서 아들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자애로운 사랑과 같은 것이다. 또한 이 사랑은 우리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그런 사랑이며(규칙 머리말 5참조), 길 잃은 양 때문에 근심에 가득 찬 착한 목자의 사랑이다. 이를 통해서 아빠스가 본받아야 할 행동은 나약하거나 게으른 형제들에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규칙 27; 펴 참조).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서를 저술할 때 자신의 제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고 수도승 생활에 원동력이 되는 사랑을 강조했다. 베네딕도 성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통적인 삶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 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규칙 4,21; 72,11 참조)는 것이다.

수도승은 성부께 대한 아들의 사랑이 보여 주는 그러한 이상을 추구한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수도승은 자신의 뜻을 주님의 뜻에 내맡긴다. 이 규칙을 알고 따른다고 할지라도 수도승의 생활이 어떤 외적인 규칙에 이끌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수도승생활은 인격체이신 주님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님은 수도승의 마음을 사로잡곡 수도승은 주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낫게 여기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수도승에게 모든 것이 된다(규칙 5,2).

그래서 수도승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규칙 4,10) -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기 위해 -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한다. 수도승은 극기하기 위해서 자신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끊어 버린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야만 주님을 따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이러한 사랑은 수도승이 서원한 순명 - 아빠스에게 지체 없이, 무조건으로, 신속하고 기쁘게 순명하는 것 - 으로 구체화한다. 아빠스에게 순명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다. 이 순명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승에게 이것을 강조한다. 순명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완전한 방법이다. 수도승은 주님께 대한 사랑에서 아빠스와 선배뿐만 아니라 모든 형제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규칙 71; 12 참조). 이것을 잘하기 위해서 수도승은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도록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경향들을 포기하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 된다. 한편 수도승은 당연하거나, 그렇지 않은 모욕과 멸시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순명한다(규칙 7,42 참조).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처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한다(규칙 4,72 참조).

수도승은 장차 주님과 함께 - 모든 형제들과 함께 -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서 이 지상에서 지극한 인내로써 주님의 수난에 동참한다(규칙 머리말 50; 72,12참조). 그래서 수도승생활은 항상 평탄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수도승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은 규칙의 엄격함과 많은 난관들을 만나게 된다(규칙 머리말47.48; 58,1 이하 참조). 사람들이 스스로 이런 어려움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도승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안에서 원수를 위하여'(규칙 472) 기도한다. 마귀가 길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수도승은 유혹하는 나쁜 생각을 즉시․ 그리스도께 메어쳐 바순다(규칙 머리말 28 참조). 그러나 수도승은 자기가 진보하는 만큼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규칙 머리말 49) 달리게 된다. 수도승이 겸손의 사다리의 모든 단계들을 오르고 난 뒤에, 그는 선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게 되며, 또한 선을 행하는 것이 그의 습관이 된다. 이제 그의 행동의 유일한 동기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규칙 7,69)이다. 그리하여 그는 성령의 기쁨 안에서 부활을 갈망하며 영원한 빠스카를 기다릴 것이다(규칙 49,7 참조).

수도승은 이렇게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또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가오는 그리스도를 인식하게 되며 그분을 만나게 된다. 특히 수도승은 함께 살고 있는 공동체의 형제들- 아빠스로부터 여행 중인 손님에 이르기까지 - 안에서 신앙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고 알게 된다. 수도승은 형제들에게 베푸는 사랑을 통해서 주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드러낸다.

수도승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아빠스이다(규칙 2,2; 64참조). 그래서 아빠스는 자기 형제들의 영적 스승이자 아버지이다. 그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로 그들을 인도하며, 규칙이 요구하는 것들을 각 수도승에게 적용하는 법을 안다. 또한 그는 사려 깊고 신중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자기 형제들을 인도한다.

아빠스는 연소한 이들과 약한 이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이와 죄인들에게도 가능한 대로 많은 배려를 해야 하고, 강한 이들이 자신의 길을 큰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또한 아빠스는 자기의사명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하고(규칙 64,8 참조), 두려움 받기보다는 사랑 받기를 힘써야 한다. 한편, 수도승들은 아빠스에게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대해야 한다. 수도승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아빠스에게 기꺼이 순명해야 한다. 이것은 실제로는 그리스도께 하는 것이다. 둘째, 수도승에게 그리스도는 - 베네딕도 성인이 복음에 근거하여(마태 25장) 강조했듯이 - 병든 형제이다.

수도승은 주님에게 하듯이 병든 형제를 돌보아야하고, 병든 형제는 지나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규칙 36,4참조). 베네딕도 성인에게 있어 진정한 이웃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셋째, 손님도 그리스도이다. 손님이 가난한 사람, 이방인 또는 나그네일 경우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규칙 53,10참조). 끝으로, 연로한 형제든지 젊은 형제든지, 그리고 성직 수사든지 평수사든지 간에 공동체 각 지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이는 형제이다. 규칙서는 모든 .형제들이 서로에게 드러내 보여야 할 존경심, 정중한 태도나 애정에 대한 많은 표징들을 제시한다. 아무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서 형제를 이용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형제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도승은 어디에서나 주님을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만남은 삶의 기쁨이요, 수도승이 수도원에서 행복하다고 느끼고 하느님의집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토대이다(규칙 머리말 참조). 수도승은 자기를 부르신 주님과 친교를 나누며 산다. 수도승은 주님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형제들과도 가깝게 지낸다. 수도승의 가슴에는 모든 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랑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가 사랑하는 주님께서 그 모든 이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승이 지극한 열정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규칙 72장 참조) 모든 수도승생활의 초점이다. 수도승은 창조주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에 가득 찬 사랑을 하루의 일과와 형제들과 지내는 일상 속에서 드러내야 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도승들에게 올바른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선, 서로 존경하는 것이다. 그 다음 빡빡한 일상의 공동생활 안에서 무조건으로 인내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영적, 육적 결점들을 참아내기 위해서 매우 필요한 것이다. 또 하나의 자세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 다투어 순종하는 노력이다.

또 한 가지는 자신의 유익보다는 타인의 유익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이타적으로 상대방을 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규칙 12장 참조). 이와 같이 하느님과 수도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것은 베네딕도 성인이 규칙서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남긴 영적인 유언이다. 그는 주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을 역설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가르침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수도승들은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규칙 72,11.12). 이 말씀은 하나의 권고이고 염원이며, 동시에 기도이다.

온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을 묶어 두는 수도승은 그분에게서 삶의 모범과 원천을 발견한다. 이것은 수도승이 임금이신 주님과의 친교를 나누며 사는 삶을 의미하고, 모든 수도 형제들과 밀접히 결합하여 이 지상에서 아무 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낫게 여기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모두가 영원한 삶에 이르게 되리라는 목표를 지니고 사는 삶을 의미한다.

(코이노니아 제20집 1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