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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07 11:34
토마스 머튼의 영성과 하느님 체험 - 내적체험과 종교간대화 1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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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적 체험과 종교 간 대화의 관련성

 

머튼의 내적 체험들, 특히 루이빌의 깨어남 체험플로나루와의 깨달음의 체험은 내적 체험과 종교 간 대화 사이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예증이 된다. 이러한 두 체험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영적 성숙의 중요성과,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와 수도승 간의 대화를 위한 내적 체험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4.1. -이원론적인 전망과 내적 개방: 루이빌의 깨달음

         

우리가 앞에서 다루었듯이, 1958318, 켄터키 주의 큰 도시 중의 하나인 루이빌, 포오쓰 앤 왈넛(Fourth and Walnut)의 거리 모퉁이에서 신비로운 내적 체험을 하였다. 머튼의 이루이빌의 깨달음은 종교적 체험이 -이원론적인 전망과 다른 이들을 향한 내적 개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1950년대 초까지 머튼은 작가가 되는 것과 관상가가 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평신도와 세속에 대해 수도승 성소의 특권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수도승 혹은 작가로서 보는 이원론적인 견해와 그의 특권의식은 1950년대 중반에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그리고 1958년 루이빌에서의 깊은 종교적 체험은 자아와 하느님께 대한 내적 깨어남과 관상과, 종교적 대화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머튼은 이 체험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자신의 일기에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루이빌에서저는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저를 압도하는 듯했고, 제가 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인류의 한 구성원입니다…. 그것은 마치 금욕과 거룩함으로 여겨지는 세상, 특별한 이 세상 (수도원) 안에서 차별과 거짓된 자기-위안의 꿈으로부터 빠져나와 이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았으며…‘세상으로부터의 분리의 개념은 완벽한 망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수도서원을 함으로써 수도승들은 다른 종류의 존재, 천사들와 같은 이들, ‘영적인 사람들,’내적인 삶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은 저의 망상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 제가 단지 다른 사람들 가운데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홀로 있는 것이 그들의 덕분인 것은 제가 그들과 하나이기 때문이며, 제가 홀로 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이아니라 바로 저 자신입니다. 낯선 이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i]

 

그는 루이빌의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신비로운 일치를 체험했다. 이 루이빌에서의 체험을 통하여, 그는 모든 인간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차별의 꿈에서 깨어났고, 자신이 인류의 구성원 가운데 한 명임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그에게 동등해 졌다.

 

이 종교적 체험은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감사하는 깨달음을 갖게 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람들 안에서 그가 새로운 성소를 찾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에게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거부하는 관상가의 일종의 고정관념을 지녔으며, 이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시인하였다.[ii] 그는 관상의 삶은 하느님과 함께, 그리고 하느님의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관상의 삶은 하느님이냐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 안에서 사람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없이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였다.[iii] 이러한 통찰은 그의 관상과 활동의 통합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 통합된 관점 안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과 가슴을 다른 이들과 세상을 향해 열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분명히 흑백의 문제가 아니었다. 루이빌의 체험 전에 머튼은 이미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 사이의 비-이원론적인 것을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마태, 22, 34-40; 25, 31-46).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그리고 이성의 빛으로부터 그는 하느님 사랑이 이웃 사랑과 분리될 수 없음을 알았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라는 저서에서, 그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image of God)”을 간직하고 있고, 다른 이를 향한 그들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iv]

 

그러나 이것은 추상적인 것이었다. 루이빌에서 그는 직접적인 관상적 체험을 통해 깊은 내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자신의 온 존재 안에 다른 이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루이빌에서 하느님의 손의 어루만짐이 저를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자신의 깨달음을 표현하고 있다.[v]

 

그는 이 체험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문제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다른 이들에게 되돌아 가도록 이끄는 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신적 신랑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격으로서 우리 안에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시고우리 자신의 인간성은 하느님 안에서 변형됩니다!”[vi] 루이빌에서 자기-변형적 체험은 그가 두번째 회심을 하도록 이끌었다.[vii]

 

머튼의 이어지는 열정적인 사회 정의 운동과 종교 간 대화의 몰두는 루이빌 깨달음의 결과물이 되었다. 예를 들면, 19581110, 머튼은 관상적 수도승으로서 자신을 어떤 고독 안으로 가둠 없이, 그리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의 모든 접촉을 잃어버림 없이충분한 사도적인 기회들을 가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진술한 편지를 교황 요한 23세에게 보냈다.[viii]

 

루이빌 깨달음에 이어지는 그의 다른 종교에 대한 개방과 관련하여, 머튼은 1959년에 대부분 기록된 내적 체험이라는 저서에서 관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설명하기 위해 불교 용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19593월에 D.T. 스즈키와 서신교환도 시작하였다. 수도생활 초기에 머튼의 서구 우월적인 태도는 동양의 관상가들과의 깊은 우정관계를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루이빌 체험 이후, 그는 다른 종교인을 보는 태도에서도 변화되었다. 가령, 불교 수도승, 틱낫한과의 만남에서 머튼은 낫한은 저의 형제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ix]루이빌 깨달음은 타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동양의 종교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머튼이 자신의 종교 안에서의 깊은 영적 체험과 성숙이 다른 이들을 향한 개방, 세상으로 향한 연대의 감각, 그리고 다음 10년을 특징지을 그의 종교 간 대화에 관한 관심을 이끌어낸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

머튼의 루이빌 깨어남 체험은 너무도 유명해서 아마 모르는 분이 없으실 것입니다. 실재로 루이빌의 그 거리에 가면, 이곳에서 머튼이 내적 체험을 하였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2014년과 2015년에 루이빌에 간 적이 있는 데, 당시에는 이 푯말이 세워져 있는지 몰라, 방문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방문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 푯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의미는 저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심장하기 때문입니다.

머튼의 글을 읽고 있었던 2013년 겨울, 매우 햇볕이 좋던 날, 저는 그의 루이빌 체험을 읽던 중, 말할 수 없는 용서와 뜨거운 사랑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마치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저를 감싸는 듯했으며, 모든 주위의 것은 사라지고 저 홀로 빛 속에 머무는 듯했습니다. 제가 만들어 놓은 모든 관념과 틀이 부서지고, 참으로 충만하고 벅찬,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제 안에서 솟아 나왔고, 저의 모든 지난 날의 아픔과 상처와 죄와 잘못을 정화시키는 듯 눈물이 두 눈에서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내면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괜찮다, 안셀모야!”

 

괜찮다, 안셀모야!”라는 말씀이 들리던 순간, 제 마음은 위로와 용서의 은총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이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머튼 신부님의 깨달음이 저의 삶을 이해하게 했고, 어제의 상처와 아픔에 집착하며 자학하던 모든 힘겨운 시간들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너가 아니라, “너를 위한 나” “하느님을 위한 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튼 신부님의 삶의 여정이 회개의 여정이었던 것처럼, 저 역시 지난 시간의 골짜기도 하나의 다음 정상을 향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기쁨이 몰려 왔습니다. 나와 나 자신, 나와 사람들, 나와 하느님의 경계가 마치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제가 토론토에서 공부하는 동안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글을 읽고 연구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섭리요 은총이었습니다. 머튼 신부님의 수도생활의 굴곡의 여정을 통해 제 수도생활과 내면의 굴곡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영적 여정에도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찾아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관상적인 만남을 통해 우리는 영적인 치유와 성장과 변화를 넘어 자기 초월의 은총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의 마음에 찾아 오십니다.   



[i] CGB, 153-155.

[ii] CWA, 141. 오늘날의 교회의 가르침과 영성에서는 이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리스도교 사상이지만, 머튼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1965) 이전의 엄격한 봉쇄 수도원에서의 삶을 배웠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그의 시대에 있어 새로운 선구자적인 깨달음이었다.    

[iii] Thomas Merton, Faith and Violence: Christian Teaching and Christian Practice (Notre Dame, I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8), 262 (여기서부터 Faith and Violence FV로 축약).

[iv] See NMI, xv, 245, 252.

[v] Thomas Merton, The Intimate Merton: His Life from His Journals, eds. Patrick Hart and Jonathan Montaldo (San Francisco, CA: HarperSanFrancisco, 1999), 125 (여기서부터 The Intimate Merton IM로 축약).

[vi] 앞의 책, 125-126.

[vii] Robert Inchausti, Thomas Merton’s American Prophecy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8), 71.

[viii] HGL, 482.

[ix] Thomas Merton, Passion for Peace: The Social Essays, ed. William H. Shannon (New York: Crossroad, 1997), 260 [Emphasis added] (여기서부터 Passion for Peace PP로 축약).


젬마 19-03-07 13:37
답변 삭제  
캔터키 주의 루이빌시가지 모퉁이에 서있는
토머스머튼 신부님의 모습안에
안셀모 신부님의 모습이 겹쳐져 보입니다.
토머스 신부님의 깨달음을 통해
깊은 감동으로 기뻐하는 안셀모 신부님의  눈 속에
토머스 머튼 신부님이 기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못나고 모자란  저도
부모가 되어서 자녀를 바라볼때에 
부모가 안보이더라도
형제 자매가  서로의 모습안에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느님에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하느님의 자녀이며 한 가족인 세상의 우리 모두가
상대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지  않을까 하고 이해하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