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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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3 08:39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서 머튼의 업적 - 머튼의 삶과 불교 1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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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머튼의 삶의 여정에서 불자들과 불교와의 만남

           

머튼의 삶의 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의 방법들과 목표들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증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의 종교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보다 긍정적인 가르침을 제시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드라마틱하게 드러났듯이, 머튼의 불교와의 대화는 배타주의로부터 개방으로, 승리주의로부터 존중으로, 그리고 단순한 지적 대화로부터 더 깊은 경청으로, 개인적인 변형의 체험으로 발전되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은 머튼이 구상했던 동양의 전통과의 수도승적, 관상적 대화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고 이를 장려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1]

           

머튼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관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禪을 포함한 동양의 전통을 만나게 되었다.  동양의 전통은 관상과 다른 이들을 향한 개방사이에서 그의 관점의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서 관상과 대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머튼의 이해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불교에 대해 어떻게 친숙함을 갖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아 보아야 할 것이다. 머튼과 불교의 관계에 있어 전문가인, 보니 떠르스톤(Bonnie Thurston)은 머튼이 불교를 알게 된 과정을 세 기간으로 나누고 있다: 수도생활 전(1937-1941), 수도생활(1941-1968), 아시아(1968).[2]

 

그런데 비록 머튼이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 동양의 신비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의 불교와 禪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가 지적인 측면에서 동양의 종교나 신비주의에 대해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에서 시작되어 1950년대를 걸쳐 점진적으로 증가되었다. 그러나 그가 지적인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은 1950년대 말부터 였다.

 

1959년에 기록된 저서, 내적 체험 에서 머튼은 1950년대 중반에 시작된 禪에 대한 깊은 관심의 열매를 기록하고 있다. 윌리엄 샤논은 내적 체험은 동양의 종교적 사상을 그리스도교 관상 안으로 연결시킨 머튼의 첫번째 책이었다고 주장한다.[3] 그러므로, 불교에 관한 머튼의 관심의 변화를 다른 방법으로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탐구의 시기(1937-1950년대 중반), 변형의 시기(1959-1968), 집중과 깨달음의 시기(1968).

 

2.1. 탐구의 시기 (1937-1950년대 중반)

           

탐구의 시기는 머튼이 1937년 올더스 헉설리(Aldous Huxley)의 저서, 방법과 수단 (Ends and Means)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신비주의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나중에 空과 비움에 관한 불교의 가르침들과 관련되었을 수 있는 부정 신학적 신비주의 (an apophatic mysticism)에 관해 관심을 갖도록 그를 자극했다.[4]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아시아의 사상을 접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의 입장을 통해 불교를 바라보았고, 禪의 수행을 우선적으로 유용한 실천적 도구라고 여겼다. 그는 동양과 동방 정교회의 신비주의 안에서 기술과 몸의 조절, 내면의 훈련에 대한 강조는 우리(가톨릭)가 그 기술들에 얼마나 극도로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5] 그는 또한 불교는 자기-비움을 강조하고 삶을 부정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허무주의나 이단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949년에 불교에 관한 머튼의 관점은 점점 긍정적으로 변화되었고 禪의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64일에 그는 난징 교구의 바오로 유-(Paul Yu-Pin) 대주교가 겟세마니 수도원 공동체에게 한 강의에 감명을 받았다. 머튼은 그 대주교가 중국과 관상적 삶과 불교의 수도생활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 불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퍼붓는 비난이 있는 데,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중국에) 세워진 병원들은 매우 훌륭하나 (중국 그리스도교에는) 관상가들이 없다고 말했다고 언급하고 있다.[6]

 

관상에 대한 머튼의 흥미는 판다냐리 요가(Patanjali’s yoga)에 관한 몇 권의 책을 보내 달라고 심라(Simla)에 있는 힌두교인에게 요청한 그의 1124일의 편지에서도 나타나 있다. 그는 또한 禪 불교에 관해서 그의 수도 공동체에서 강의를 했던, 禪 불교 청원자였던 하와이 화학자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7]

1950년대 중반, 일본 학자, D.T. 스즈키의 禪에 관한 작품들을 읽은 머튼은 禪 불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 졌다. 그는 禪을 자신의 사도직의 중요한 매개체로 언급하고 했고, 사막의 교부들과 禪 불자들의 영성 사이의 유사점들을 보기 시작했다.[8] 이 유사점들은 참 자아를 찾는 것, 자기-초월을 향한 지향, 선문답(koan)과 금언들의 사용, 그리고 자기-비움의 과정에서 고통을 받아들임을 포함했다.

 

1958년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사람들은 서로 고립될 수 없다는루이빌의 깨달음이후, 그는 마음과 가슴을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들을 향해 활짝 개방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禪과 불교에 관한 머튼의 관심은 1950년대 중반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가 헉슬리의 책을 읽고 난 후부터 20년 동안 서서히 개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 See Thurston, “Thomas Merton: Pioneer of Buddhist-Christian Dialogue,” 128.

[2] See Bonnie B. Thurston, “Unfolding of a New World: Thomas Merton & Buddhism,” in Merton & Buddhism, 15-22.

[3] See IE, xiv.

[4] 헉슬리의 책이 머튼에게 준 가장 큰 영향은 그가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동양의 신비주의에 관련된 책들을 샅샅이 찾아 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See SSM, 204. Blée 올더스 헉슬리의 영향 하에, 머튼은 활용할 수 있는 명상에 관한 신비적 테크닉들이 그의 마음 안에 평화, 관용, 자선과 같은 이상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상에 깊이 감동되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이 시점에 동양에 관한 그의 연구는 표면적이었고 산만했으며, 결과적으로 큰 소득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See Blée, 40.

[5] ES, 402; cf., SSM, 205.

[6] SJ, 197.

[7] 앞의 책, 243.

[8] See SS, 48, 57, 272-273. Shannon서구의 신비적 전통들(이집트 교부들, 성 바실리오, -디오니시우스, 성 베르나르도와 다른 시토회 저자들, 엑크하르트, 십자가의 성 요한과 많은 다른 이들)에 관한 머튼의 연구들은, 그가 초기에는 가질 수 없었던 동양의 사상에 대해 개방하고 그 진가를 알아 볼 수 있도록 최종적인 준비를 하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는 서구에서 동양의 사상에 대해 정교하고 높은 존경을 받는 해석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See Shannon, Silent Lamp,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