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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17 16:59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서 머튼의 업적 - 머튼의 불교 이해 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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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음의 순결, 부정신학적(Apophatic) 신비적 길과 空(Sunyata)


          관상적인 삶의 중간 목표인 마음의 순결”(purity of heart)에 대한 요한 카시아노(John Cassian 360-435)의 이해를 통하여, 머튼은 禪의 비움을 空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비록 카시아노의 마음의 순결이 스즈키의 용어 비움과 대략적으로 부합한다고 할지라도, 두 개념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1] 그리스도교 수도승의 관상적 노력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음의 순결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이며, 이는 禪의 영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스즈키와의 대화에서 비움을 표현하기 위해 카시아노의 마음의 순결을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마음의 순결은플라톤적인 암시들인격의 초월적 성취를 포함하고 있는 반면, 불교의 비움은 모든 이원론적 관점과 인격성을 완전하게 부정한다.[2]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 복잡한 질문을 논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교의 마음의 순결과 禪의 비움사이의 관계는 앞으로 좀 더 연구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3]


          머튼은 禪의 空에 대한 아리송하고 수수께끼같은 표현과의 대화를 위해 그리스도교의 부정신학적 신비주의 전통들(the apophatic mystical traditions)을 언급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그리스도교 영성과 禪의 비움의 개념과 관련하여 마이스트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 와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의 관점을 다루었다.


          머튼은 마이스트 에크하르트가 그리스도교 체험 안에서 禪에 대해 묘사한 적절한 표현의 진가를 알아보았다.[4] 13세기 독일의 신비주의 신학자 에크하르트는 하느님의 모든 개념들은 관상의 가장 깊은 단계에서 포기해야만 한다고 언급했다: “영혼은 반드시 자유로운 無 안에 존재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단념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이며, 영혼이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을 안다, 하느님을 깨달았다고 하는 한,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멀다.”[5] 하느님의 無와 비움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신비적 직관에 대해 스즈키는, 이것이 禪과 가장 유사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라고 보았다.


 스즈키는 내가 에크하르트를 해석할 때, 하느님은 즉시 당신이 일하는 곳에 있고 그 일 자체이다. 그 장소는 제로 (the zero-place) 혹은 궁극적 존재로서 비움 (Emptiness as Being)이며, 반면 그 제로의 장소에서 수행되는 일은 무한 (infinity) 혹은 궁극적 되어짐으로서 비움 (Emptiness as Becoming)이다라고 언급했다.[6] 머튼은 에크하르트의 신비적 직관 안에서 신적(神的) 無의 비움의 바탕이 禪의 직관적 지혜인 반야(般若Prajna)와 부합한다는 스즈키에 동의했다. 에크하르트가 언급했듯이, “하느님의 바탕과 영혼의 바탕은 하나의 바탕이므로, 머튼과 스즈키는 반야의 빛이 의식의 바탕이 되는 본성에 침투한다고 보았다.[7] 머튼에 따르면, 스즈키가 자주 인용하는 에크하르트가 한 말, “내가 하느님을 보는 눈은 하느님께서 나를 보는 같은 눈이다는 반야에 의해 禪이 의미하는 것의 정확한 표현이다.[8] 머튼은 반야가 空의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영적인 통찰의 한 종류이며, “모든 것들이 하나라는 점에서 태초의 空에 대한 성숙한 파악이라고 주장했다.[9] 스즈키와의 대화를 통해 머튼은 에크하르트의 신적 바탕의 비움은 空의 비움 안에서 반야와 호환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10]



         

머튼은 禪의 비움의 의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부정의 길(via negativa) 혹은 부정 신학과 비교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인간을 하느님의 빛이 비춰지고 있는 창문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유리창의 모든 얼룩을 깨끗하게 한다면, 그것은 완벽하게 투명하고, 우리는 그것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비움과 無라는 것은 오직 빛으로 보여집니다.”[11] 禪은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개념화에 관심이 없고, 그래서 비록 누군가 空의 禪 체험과 부정신학적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의 無知안에서 하느님 체험 사이의 사변적인 유사점들을 발견하기 위한 자격을 준다하더라도, 단순히 교의로서 적당하게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12]두 종교 모두 존재의 자아가 없어지는 주요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비움의 개념이기 때문에, 머튼은 비움의 기본적 개념은 禪과 그리스도교의 통합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직관했다.[13]


          머튼에게 있어 禪의 空 체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림을 통해 얻게 되는 하느님의 無와 충만함(the nothingness and fullness of God)의 체험에 부합한다. 그는 하느님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거룩함과 그리스도 예수의 알려진 자비가 禪의 空, 즉 비움과 충만의 개념 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았다.[14] 그는 모든 초월적 체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비움의 변형이며空이 되는 것입니다.”[15] 그리스도의 이 자기비하는 無이며 동시에 하느님 사랑 안에서 충만이다. 관상가는 하느님의 바로 그 無의 체험안으로 들어 감으로써 하느님 현존의 신적 충만함 속으로 동화될 수 있는 것이다.[16]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 관한 강의 노트에서 머튼은 이렇게 기록했다: “신비 신학은 단순한 부정의 길, 부정 신학, 변증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긍정 신학과 부정신학이라는 추론적인 신학의 두 형태 모두를 넘어서 있습니다. 그것은 이 두 신학의 성취입니다.”[17]


여기에는 머튼의 그리스도론은 강력한 부정신학으로서 하느님에 대한 그의 이해와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신학임이 반영되어 있다. 샤논은 만약 하느님에 대한 머튼의 이해가 강력한 부정 신학이었다면, 그것은 그의 그리스도론이 명백한 긍정 신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계시자이며 숨겨진 하느님의 현현(顯現)이다.”[18] 그래서 불교의 空을 향한 머튼의 부정 신학적 접근은 그의 긍정 신학적 그리스도론과 조화를 이루었다.



[1] ZBA, 131.

[2] 앞의 책, 9, 117-118.

[3] 앞의 책, 131. 최근에 Bruno Barnhart는 그리스도교와 아시아 전통들 사이의 자연스런 만남의 장으로서 마음의 순결의 개발을 시도했다. 그는 마음의 순결을 내면성의 측면에서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자아의 특징으로 정의했다. 그는 세례를 통한 재탄생과 조명은 비이원론, -이중적 자아의 체험으로서, 근본적인 그리스도교적 관상적 체험이다…. 신적 영의 새로운 주입으로 인간은 그 마음 안에 새롭게 창조된다라고 주장했다. See Bruno Barnhart, “Christian Self-Understanding in the Light of the East,” in Purity of Heart and Contemplation: A Monastic Dialogue between Christian and Asian Traditions, eds. Bruno Barnhart and Joseph Wong (New York: Continuum, 2001), 302-303.

[4] ZBA, 9.

[5] Meister Eckhart, Selected Writings, trans. Oliver Davies (London: Penguin Books, 1994), 244 [Emphasis added]. 스즈키는 에크하르트가 비-이원론적인 용어로 하느님의나타나심을 묘사할 때 禪의 비움 (Sambodhi)과 가장 가깝게 묘사했다고 보았다. See ZBA, 114. 그러나, David Tracy에크하르트의 변증법은 불교에는 있지 않은 움직임, 즉 삼위로서의 하느님과 창조주 하느님의 구별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 현현을 향한 움직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의 ”(nothingness)와 禪 사상의 절대적 無(absolute nothingness)가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 Tracy는 다이내믹한 空에 대한 불교적 변증법은, 다이내믹한 空 그 자체로 깨달은 이에게 지혜와 자비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자기-현현과 유사한 특징을 지닐 수 있으나, 여전히 삼위일체와 창조주에 대한 더 극단적인 변증법적 언어 안에서 네오-플라톤적 언어를 분명히 계승하고 있는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불교와는 같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See David Tracy, Dialogue with the Other: The Inter-Religious Dialogue (Louvain: Peeters Press, 1990), 88-90.

[6] ZBA, 110.

[7] Meister Eckhart, The Essential Sermons, Commentaries, Treaties, and Defense, trans. Edmund Colledge and Bernard McGinn (New York: Paulist Press, 1981), 192; Daisetz T. Suzuki, Essays in Zen Buddhism, III (London: Rider, 1970), 34; ZR, 535. Hans Urs von Balthasar 에크하르트의 진술은 범신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See Hans Urs von Balthasar, 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5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1982), 45.

[8] ZBA, 57. 머튼에 따르면, “반야자기-실현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를 넘어 순수하고 단순한 깨달음이며, 이것은 특별히 아무 곳에도 거주하지 않으며, ‘우리 안에혹은 더 나은 표현으로, 우리가 그것 안에있다.” See ZR, 535.

[9] ZBA, 112, 68. 스즈키에 따르면, 대승 불교에서 여섯 ParamitaDana(증여)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단계가 반야 Prajna이다. 그는 불자들의 삶은 증여에서 반야로 끝을 맺는다…. 이 증여는 비움이 있을 때 가능하며 비움은 에크하르트의 진정한 가난(die eigentlichste Armut)과 같은, 증여가 조건없이 수행될 때 오직 얻어질 수 있다.”앞의 책, 112.

[10] MZM, 244. Matthew Fox에 따르면, 스즈키와 머튼의 대화는 그의 에크하르트에 대한 생각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1950년대 중반, 머튼은 에크하르트를 소위 이단이라고 여겼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하지만, 스즈키의 도움에 힘입어, 에크하르트의 진가에 대한 머튼의 이해는 발전되었고, 마침내, 에크하르트는 그의 구조선 (lifeboat)이 되었다. See Matthew Fox, A Way to God: Thomas Merton’s Creation Spirituality Journey (Novato, California: New World Library, 2016), 41-42.

[11] ZBA, 119.

[12] 앞의 책, 35.

[13] Fader, 245.

[14] 머튼은 오직 비움으로 묘사되는의 위대한 비움은 그 어떤 특정한 한계가 없이 완전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은 또한 완벽한 충만함이다라고 진술했다. See ZBA, 85. 그는 또한 분명히비움은 더 이상 충만함에 반대가 아니며, 비움과 충만함은 하나이다. 제로는 무한과 같다라고 언급했다. See ZR, 535; see more, Andy Lord, Transforming Renewal: Charismatic Renewal Meets Thomas Merton (Eugene, Oregon: Pickwick Publications, 2015), 35-37.

[15] ZBA, 75 [Emphasis added].

[16] James Conner, “The Experience of God and the Experience of Nothingness in Thomas Merton.” The Merton Annual 1 (1988), 111.

[17] Thomas Merton,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Mysticism: Initiation into the Monastic Tradition 3, ed. Patrick F. O’Connell (Kalamazoo, MI: Cistercian, 2008), 142-143.

[18] William H. Shannon, “Christology,” in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