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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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01 20:30
불교-그리스도교 대화에서 머튼의 업적 - 머튼의 불교 이해 4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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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그리스도교의 하느님화(Divinization)와 사랑, 불교의 열반(Nirvana)과 자비

깨어난 이의 해탈 혹은 자기-초월은 자신의 문화나 종교를 넘어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개방으로 드러난다. 즉, 머튼의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의 경험은 자기-몰두(self-absorption)의 경계를 허물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넘어 하느님 안에서 보편적인 관점의 참된 진가를 알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느님과 일치,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참 자아를 찾기 위한 탐구와 관련하여, 머튼은 이렇게 진술했다: “항상 홀로 있는 이 내면의 ‘나’는 항상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이 가장 깊은 ‘나’ 안에서 저 자신의 고독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고독과 하느님의 고독과 만납니다…. 이러한 ‘나’는 제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 살게 됩니다.”[1]

그는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을 동방 그리스도교(Eastern Christianity)의 개념인 인간 존재의 “하느님화”(divinization, theosis)로 묘사했다. 그는 하느님화를 “어떤 이에게 신성이 부여되었을 때 그는 참 자아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상승과 변형에 의해 하느님과 신비롭게 하나됨을 발견하기에 이것은 자기-실현에서 궁극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2] 하느님화를 통해, 머튼의 통합된 자아는 내적이거나 외적인 자기-경계들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참된 자아의 실재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머튼은 자신의 모든 활동들 안에서 “분리됨의 꿈”(a dream of separateness)으로부터 그를 모든 이를 향한 사랑으로 깨어나게 한 “루이빌 깨달음”은 사랑과 자비와 함께 세상을 위해 일하도록 방향을 잡게 했다.[3]

머튼은 하느님화를 통해 다른 이들을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열반(Nirvana)안에서 불교의 자비(Karuna)와 유사함을 발견하였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이와 하나됨을 실현하기를 추구합니다. 불교적 자비는 분열과 환상으로 인한 부서짐을 치유하고자 하며,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일체성’ 혹은 심지어 범신론적인 내재론에서가 아니라, 열반, 즉, 절대적 실재이며 절대적 사랑인 空 안에서 완전함을 찾으려고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랑의 가장 높은 깨달음은 ‘체험하는’ 주체의 모든 심리학적 한계들이 사라지는 사랑의 증거의 힘이 폭발할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그 무엇은 사랑 자체의 초월적인 자비라는 것을, 이해를 넘어 신비 안에서 자아 없는 주체 안에서 깨닫게 됩니다….”[4]

비록 불자들이 절대 타자와의 하나됨을 찾지 않는다 할지라도, 머튼은 사랑의 힘의 완벽한 하나됨 안에서, 자아가 없어진 주체 안에서, 그리고 궁극적 존재 자체의 개방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자비와 불교의 열반 사이의 공통된 배경을 보았다. 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를 잃어 버리고 다른 이들을 향한 참 자아의 개방에서 발견될 수 있다. 머튼에 따르면, 열반은 단순한 사랑의 체험이 아니라, 경험을 초월하며, “궁극적 존재 자체의 거대한 개방이며, 순수한 존재는 무한한 증여라는, 혹은 절대적인 비움은 절대적인 자비라는 깨달음”이다.[5] 게다가, “열반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발견된다. 진리는 어떤 특정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6]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고 (루가 17:21) 지금 여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다른 이들과 세상을 향한 사랑과 자비 (Karuna)는 종교적 문화적 경계들을 넘어서 깨어남의 열매인 것이다. 사랑과 자비를 통하여 깨어난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현행의 사회 문제에 관련하여 함께 협력할 수 있다.

머튼은 타인과의 자비로운 사랑의 나눔은 두 전통의 마지막 종착지이며 자기 초월의 열매임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성소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위대한 자비, 사랑과 연민으로 다른 사람들이 해탈을 얻도록 돕기 위해 열반에 들기를 연기한 선종(禪宗)의 보살(bodhisattva)의 삶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7] 그는 “[불자들의 말하는] 참된 반야와 자비(Karuna)는 하나라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는 사랑(Caritas)은 지고한 지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8] 요컨대, 머튼은 종교 간 대화는 참된 자기-초월과 의식의 변형을 찾는 영적 토대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초월된 자아(transcendent self)는 자비로운 자아(compassionate self)가 되며, 이 자아는 종교와 문화적 경계들을 넘어 다른 이들을 향한 개방과 자비로운 사랑으로 나타난다.


[1] DQ, 207.

[2] NM, 48.

[3] CGB, 153-154.

[4] ZBA, 86-87 [Emphasis added].

[5] 앞의 책, 86.

[6] 앞의 책, 87.

[7] 앞의 책, 38.

[8] 앞의 책, 62. 스즈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앞의 책,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