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하느님의 사랑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고 반감마저 갖고 있다. 목 암에 걸려 손도 써 볼 수 없게 죽어가는 어린이를 보고 ‘하느님이 아버지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한들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이 보장은 무엇에 대한 보장인가? 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떤 것에 대한 보장이라고 믿고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가? 왜 하느님의 사랑을 나에 대한 어떤 보장으로 생각하는가?

한 인간이 나를 사랑하면 그는 나의 어려운 상황에 대하여 어떤 보장이 될 수 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의 삶의 어떤 담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서로 다르기에 똑같이 적용될 수 없다. 인간의 사랑에 대한 말은 하느님 사랑에는 그러한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하는 사람, 하느님께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현실적으로 그에게 일어나도 그러한 일들이 그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는 상관이 없다. 그가 하느님께 신회하고 있는 것은 자기 안녕을 휘하여 하느님을 신회할만 하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도 아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라는 말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표현이며 어떤 방식으로 살겠다는 마음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살겠다는 삶의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사랑을 내 삶의 어떤 담보나 보장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사건들이 자기에게 닥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 아니며, 자리에게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 것이다. 자기라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는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할 것이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이다. 목 암에 걸려 죽어가는 소년의 아버지도 자기 아들을 보고 ‘하느님은 너를 사랑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에 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같은 맥락에 두게 되면 어려운 처지에서는 하느님 사랑을 부인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신뢰하고 하느님께 의존한다는 표현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라는 뜻이고 마지막엔 모든 것이 그대로이고 상실한 것이 없게 되리라는 뜻이다. 이러한 하느님께의 신뢰로서의 하느님 사랑은 죽음까지도 극복하게 한다. 비록 지금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또는 죽은 사람에게도, 이 죽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뜻으로 또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뜻으로 ‘하느님이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라자로를 살리시기 전에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이것이 죽은 후의 삶이 무엇인지 말하는 출발점이다.

가끔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다. 사랑은 하느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이는 인간이 사랑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사건을, 그 이상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잃는다.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은 이론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자기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방식의 변화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절망상태에서도 아직도 어떤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나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은 어떤 증명이 있어서 그렇게 삶을 바꾼 것이 아니고 자기 삶에 일어난 일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은 선험적인 것이다. 발견해 낸 것이 아니고 경험 이전의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 보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1-19)

여기서의 죽음, 생명, 천자, 현재의 것, 미래의 것, 능력의 천신, 높음, 깊음 등은 모두 선험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알았는가? 그가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은 것들을 관찰해 보고 나서 한 말인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겪은 여러 가지 불운한 일들을 말하기를 좋아한다. 2고린 11,23-33과 4,8-11에서 바오로 사도가 어떻게 박해를 받고 재판을 받았으며 파선, 기아, 칼, 온갖 위험을 다 겪고도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하느님의 사랑은 선험적인 것이다. 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 선험적 체험으로 인해 우리는 아무리 눌려도 눌리지 않는 탄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크리스찬들이 사는 방식이고 사물을 보는 특별한 방식이다.

어떤 사람은 심한 고통 때문에 신앙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러한 심한 고통을 통해 신앙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자기를 도와 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자기를 도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처지에서, 그리고 자기 고통을 어떻게 겪어 냈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처지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나를 도왔다’고 한다. 이 말은 내가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겪어 내기에는, 참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무 도움도 없이 그 어려움을 겪어 냈을 때의 그 신비를 표현하는 말이다.

삶속에서 이러한 신비의 발견은 ‘하느님 발견’이다. 하느님 신비의 체험이다.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신비를 더욱 분명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고통 중에 있을 때는 몸부림치면 안 된다. 참으로 고통 중에 있을 때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사물이 보이듯 고통에서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요한 1서 4,16-18을 읽고 묵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