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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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순4주일(가해)-마음의 눈을 뜨자: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1 00:17: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297   
사순 제4주일(가해) 왜관1.2기 봉헌회 강론(2002. 3. 10)

"마음의 눈을 뜨자"

제1독서: 1사무 16,1.6-7.10-13
제2독서: 에페 5,8-14
복 음: 요한 9,1-41


오늘 말씀들에서 우리는 '깨어남', '눈뜸', '알아봄', '빛'과 같은 주제들을 접하게 됩니다. 제1독서에서 야훼께서는 소년 다윗을 알아보십니다. 그리고 제2독서에서는 잠에서 깨어나라고 합니다. 복음은 태생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모두가 '눈' 또는 '보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듯 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내적 각성 곧 깨달음의 과정을 연상케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 내적 각성 과정을 열 가지 소 그림(十牛圖)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소는 우리의 참된 자아를 상징하는데, 바로 참 자아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인간의 내적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태생 소경의 치유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이런 내적 신앙 여정을 잘 반영하는 듯 합니다. 그것은 무지와 오류의 어둠에서 깨어나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태생 소경이었던 사람이 치유되어 변화되는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를 몇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으시오"(요한 9,7a)

예수께서 소경을 보시고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고 하신 명령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소경이 청하기도 전에 예수께서 먼저 그를 치유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주도권이 예수께 있음을 드러내 줍니다. 이 첫 단계는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순간을 생각케 합니다. 즉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응답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전 삶 안에서 하느님의 주도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맹인은 곧 가서 씻고 보게 되어 돌아갔다"(요한 9,7b)

이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즉 응답의 단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단계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례를 통해 새로 남을 상기시켜 줍니다. 소경은 예수의 말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이는 나병 환자였던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예언자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치유된 경우와 비슷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종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무엇보다도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믿음이 없을 때 순종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소경은 예수의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여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응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3. "그분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오"(요한 9,23)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이제 서서히 참된 진리의 빛, 곧 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바리사이파들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증거합니다. 이 단계는 우리 신앙고백과 증거의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경과 유대인들의 상반된 두 자세를 보게 됩니다. 하나는 믿음과 순응의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과 불응의 자세입니다. 소경은 믿음과 순종으로 눈을 떠 빛을 보게 되고, 그 빛으로 조명되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불신과 불응으로 오히려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는 눈뜬 소경들이 됩니다. 소경의 치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어둠 속에 머뭅니다. 예수께 대한 불신과 편견이 마음의 눈을 멀게 하여 결국 그들의 깨달음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를 '죄인'(24절), '출신도 알 수 없는 자'(29절), '안식일을 어긴 자'(14절)로 간주하여 적대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소경은 유대인들의 몰이해와 박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예언자'(17절)요 '하느님이 보내신 분'(33절)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주님'(38절)으로까지 고백하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입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의 눈이 멀은 눈뜬 소경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참된 진리의 빛,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눈을 떠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듯이 마음의 눈을 떠야 사물의 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참된 빛을 보고 그 빛에 의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사물들을 육신의 눈,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 참 모습을 놓치게 됩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을 처음 대면할 때, 그의 출신배경, 학벌, 사회적 지위, 재력과 재능 등을 먼저 보고 미리 그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냥 내 앞에 서 있는 한 인격 자체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선입견과 편견을 낳습니다. 그래서 늘 사람의 참다운 모습과 속마음을 보지 못하고 결국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을 인간적인 눈, 세속적인 눈으로 보려할 때 우리는 바리사이파들과 같이 참된 진리의 빛을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야훼께서는 사람들과는 달리 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안중에도 없던 소년 다윗을 알아보시고 그를 선택하십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는 다릅니다. 마음의 눈을 뜰 때 우리는 그분의 눈을 닮아갈 것입니다. 태생 소경은 육신의 시력을 회복함과 동시에 마음의 시력을 회복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음의 눈을 떠 신앙의 눈,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대 위에 그리스도 빛나시리라"(에페 5,14).

그러면 눈을 뜨기 위한, 깨어나기 위한 조건들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마음의 눈을 멀게 하는 것들은 완고한 마음, 관습과 인습에 얽매인 태도, 시기심과 질투, 자리에 대한 위기감, 이중성, 편견과 고정관념 등입니다. 반면 단순성, 개방성, 믿음, 그리고 순명의 자세 등은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한 조건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태생 소경은 단순히 예수의 말씀을 믿고 그에 따랐습니다. 그 결과 눈을 떠 잠으로부터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내적 각성, 깨달음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어둡게만 보이던 모든 사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물의 참 모습과 이치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5. "빛의 자녀답게 사시오"(에페 5,8b)

이는 내적 각성에 이른, 즉 마음의 눈을 뜬 이들에게 요구되는 구체적인 응답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 있는 빛"(에페 5,8a)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답게, 곧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이는 온갖 선과 진리와 의를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먼저 다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물로써 어둠 속에 잠자고 있던 우리 내면의 눈을 뜨게 하시어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하느님의 자비 지극하신 이 초대에 기꺼이 응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눈을 뜨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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