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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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22주일-맨 끝자리에 가서 앉으시오: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26: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589   
연중 제22주일(2001. 9. 2)
제1독서: 집회 3,17-18.20.28-29
제2독서: 히브 12,18-19.22-24a
복 음: 루가 14,1.7-14
"맨 끝자리에 가서 앉으시오"


오늘 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초대받는 이들'에 대한 권고이고, 후반부는 '초대하는 이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1독서에서는 겸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과 독서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묵상거리들을 제공해 줍니다.

먼저 제1독서와 복음에서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바로 '겸손'입니다. 집회서 저자는 "훌륭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겸손하라"(집회 3,18)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당신의 오묘함을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내신다"(집회 3,19)고 말합니다. 한편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초대받거든 맨 끝자리에 가서 앉으"(루가 14,10)라고 하십니다. 끝자리는 분명 누구나 기피하는 자리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느라고 혈안이 되었듯이 사람들은 대개 윗자리를 선호합니다. 그래서 늘 첫 자리,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분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는 남으로부터 대접받고 인정받고자하는 성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향은 어찌 보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은 이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의 인간적 기대와 상식을 뛰어 넘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위로만 향하려는 우리를 오히려 밑으로 끌어내리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루가 14,11). 스스로 내려 올 때, 스스로 낮아질 때 비로소 높여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는 시소의 원리를 떠올리곤 합니다. 시소 놀이에서 가벼운 사람이 위로 올라갑니다. 이렇듯 자신을 비운, 마음의 모든 사욕을 비운 청정하고 겸손한 사람일수록 위로 높이 올려질 것입니다. 사실 낮은 자리, 끝자리를 취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 안에는 낮은 자리를 선호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별히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윗자리는 가장 높으신 분, 그리스도를 위해서 남겨두었습니다.

낮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하느님에 대한 참된 인식'이 전제된다고 봅니다. 7세기 수도승이자 주교로서 금욕적 주제들에 관해 많은 저술을 하였던 시리아의 이사악은 일찍이 "겸손은 하느님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한 바 있습니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또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윗자리가 자신에게 합당치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느님께 합당한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낮은 자리를 찾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오는 이런 자세, 즉 겸손은 무엇보다도 수도승들이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서 오랜 고행과 금욕적 수행들을 통해 높은 덕에로 나아간 수도승들이 교만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 치게 되는 일화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사막 교부들은 교만을 가장 뿌리뽑기 힘든 고질적인 악습으로 비판하면서, 한결같이 겸손을 강조하였습니다. 시리아의 이사악 역시 "만일 겸손이 없다면, 금욕적 수행들과 덕행들은 헛되다"(Prima collezione 58)고 가르칩니다. 성 베네딕도에게 있어 겸손은 특별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겸손에 관한 그의 규칙서 7장에서 그는 하늘로 오르는 야곱의 사다리에 비유하면서 겸손의 12단계를 제시합니다. 겸손에 나아갈수록 하늘로 가까이 올라가게 되고 교만으로 지옥으로 점차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겸손은 참된 수도승을 가늠하는 척도였습니다.

겸손은 내적 성숙의 표지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내적 깊이와 상태를 측정하는 시금석과도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자신의 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윗자리, 높은 자리를 향해서 돌진한다면 그는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입니다. 높은 자리, 윗자리는 우리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그것은 수도 교부들이 또 수많은 성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남겨두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루가 14,11)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이러한 하강, 내려옴이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일깨워 줍니다. 이 부분은 초대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권고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초대의 대상이 두 부류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즉 첫 번째 부류는 '친구, 형제, 친척, 부자 이웃들'이고, 두 번째 부류는 '가난한 이, 불구자, 절름발이, 맹인'들입니다. 전자는 그들의 호의에 보답할 능력이 있는 반면, 후자는 그러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초대하는 사람들에게 두 번째 부류를 선택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날 하느님의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잔치를 베풀 때는 오히려 가난한 이, 불구자, 절름발이, 맹인들을 초대하시오....그러면 하느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루가 14, 13-14). 여기서 루가가 제시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성전에서의 종교적 봉사조차 제외되었던 사람들의 범주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다음 두 가지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무상성'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입니다.

우리는 어떤 선행이나 호의를 베풀 때, 많은 경우 상대로부터 은근히 어떤 인간적 보상이나 대가를 바랍니다. 흔히 이를 보상심리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우리의 선행과 자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배푼 만큼 도로 받고자 하는 보상심리는 우리 행위의 진실성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부차적 목적 때문에 행하는 선행이나 호의는 결코 순수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무상성을 가르치십니다. 인간의 보상이 아닌 하느님의 보상을 갈망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 듯 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깊은 신앙으로부터 나옵니다.

또한 여기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의 특별한 관심'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끝자리를 취하셨고, 스스로 작은 이가 되시어 소외 받은 이들의 벗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하는 사람들이 주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그리스도께서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이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시지는 않는지, 또 우리로부터 무시되거나 거부되지는 않으시는지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끝자리로 내려올 수 있고, 끝자리로 내려올 수 있는 사람만이 소외된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낮은 곳에 그들과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과 독서의 말씀은 우리 삶의 내적 자세와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보상에 대한 확신과 희망으로마음을 비우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때 마지막 날, 하느님께서 우리를 들어 높여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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