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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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32주일(가해)-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려라: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00:02: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670   
연중 제32주일(가해) 강론(02. 11. 10)

제1독서: 지혜 6,12-16
제2독서: 1데살 4,13-18
복 음: 마태 25,1-13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려라”

우리가 방금 들은 열처녀의 비유는 마태복음 24장에서 25장까지의 종말론적 담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다리다’, ‘깨어있다’, ‘준비하다’와 같은 세 가지 핵심 동사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 동사들은 우리 그리스도인 삶의 중요한 측면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 동사들을 중심으로 우리 삶에 중요한 몇 가지 내적 자세들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기다리는 자세

먼저 그리스도인 삶에 필요한 첫 번째 자세는 ‘기다리는 자세’입니다.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열처녀들은 모두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늦자 모두 잠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들이 신랑이 언제 오는지 알았다면 끝까지 기다렸을는지도 모릅니다. 불행히도 그들은 그 때를 몰랐습니다. 이 비유는 때를 알 수 없는 막연한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다림에는 참으로 큰 인내가 요구됩니다. 인내 없이 언제 올 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 뭔가 확실하다면 누구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다리는 자세는 인내하는 자세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삶은 바로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주님의 오심을 인내롭게 기다리는 삶입니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칫 두 가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예 주님을 잊고, 세상일에만 파묻혀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이 뭔가 확실치 않고 막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신앙이고 희망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위험은 반대로 아예 현실을 등지고 두 손 놓고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란 현실부정이나 현실도피의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기다림의 삶은 현재를 적극적으로 사는 삶입니다. 매순간이 구원을 위해 결정적인 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순간을 진지하게, 충실히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빨리 오시든 혹은 늦게 오시든 그 시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열처녀의 비유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충실히 살라고, 그럼으로써 당신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권고하시는 듯 합니다. 우리는 결코 사이비 종말론과 같은 현실도피나 몽상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깨어 있는 자세

그러면 주님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오늘 복음의 말미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시오. 그 날과 그 시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마태 25,13). 혹시 누가 주님의 이 권고를 잠을 자지 말라는 것으로 알아듣고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고 의아해 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잠을 안자고 24시간을 항상 눈을 뜨고 있으라는 말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잠은 육체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면 깨어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수도승 전통 안에 넵시스 Nepsis라고 하는 그리스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말로 ‘깨어 있음’, ‘절제’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풀이하면 늘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들을 경계하며 순수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도자들이 해왔던 비질리아 vigilia, 즉 철야 혹은 밤샘기도도 바로 이런 깨어 있음의 한 형태입니다. 요즘도 이러한 철야기도를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즉 열심히 철야를 하고서 다음날은 모든 것을 전폐하고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낮에는 골방에 들어가 잠자고 밤에는 기도하러 밖으로 나오는 격입니다. 이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언제 기도 하느냐, 또 얼마나 더 오래 기도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깨어 있다는 것은 내적 자세의 문제라 봅니다. 아마도 매사를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시류에 편승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늘 우리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음과 생각들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자녀로 합당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깨어 있음은 신랑이 오리라는 희망 때문에 가능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데살로니카인들에게 ‘주님을 만나 언제나 그분과 함께 있게 되리라’는 것을 희망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1데살 4,17-18참조). 희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삶에 희망이 없으면 무기력해집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역시 희망을 잃게 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종종 쉽게 좌절하고 궤도이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가야할 삶의 참된 목표와 이상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늘 깨어 살기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슬기로운 처녀들 역시 잠에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졸다가 모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등잔만을 준비한 어리석은 처녀들과는 달리 기름도 준비하고 있었기에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3. 준비하는 자세

열처녀의 비유에서 우리는 등잔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라는 우리 각자의 신분에, 그리고 기름을 각각의 신분에 따른 삶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와 수도서원과 서품을 통해서 이미 등잔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잔에 기름, 곧 삶을 채우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만일 슬기로운 처녀들이 깨어 있었다 하더라도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깨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깨어 있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름에도 종류가 있듯이 우리 삶에도 질의 차이가 있습니다. 좋은 기름이 불을 잘 밝힐 수 있듯이 거룩한 삶, 내실 있는 삶을 살 때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보다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거룩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듯이 그것은 일차적으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기도 없이 우리 삶은 공허하고 무기력해 지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하느님을 찾고, 그분 현존 안에 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더욱이 기도하는 사람인 수도자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우리는 늘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그분을 향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거룩하게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은 ‘사랑으로 선행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손은 봉사에 그대들의 가슴은 사랑에 내놓으십시오!”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랑과 봉사 안에서 그 진가가 드러나고, 참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선행 실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도와 선행을 통하여 양질의 기름을 준비하도록, 다시 말해 우리 삶을 거룩하게 준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늘 깨어 있어야, 즉 매사에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갑자기 도둑처럼 오실 주님을 제대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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