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주님세례축일(나해): 박 블라시오 신부 07-10-14 00:05: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432   
주님 세례 축일 강론 (2003. 1. 12-왜관 본원)


도입말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오늘로써 성탄·공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됩니다. 저희 공동체는 매달 첫 주일에 성수 예식을 하며 우리의 세례를 기념하지만, 이번 달은 주님 세례 축일인 오늘 성수 예식을 거행합니다.

주님 세례 축일에 우리 자신의 세례도 기억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청하도록 합시다. 또한 이번 주간에 첫서원과 서원 갱신, 종신 서원을 하게 될 형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도록 합시다.


강론


이 미사에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은 아마 대부분 세례를 받은 분들이겠지요? 혹시 자신이 세례를 받던 날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이틀 만에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저의 세례날이 어떠했는지 기억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례 성사 때 언제나 불리는 성가 1번 ‘나는 굳게 믿나이다. 진실하온 주님 말씀, 성세 때에 드린 맹세 충실하게 지키리라’ 하는 성가를 부를 때나, 다른 분들이 세례를 받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참 아름답다!! 하는 느낌이 언제나 듭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에 이미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생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요구하며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요한을 찾아 오셔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요르단강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며, 하늘에서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음성이 들렸다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도 없는 분이시고, 죄의 용서도 받을 필요가 없는 분이신데, 왜 요한으로부터 그런 세례를 받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냈습니다. 공현축일에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 예수께서 주님이시고,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임이 선포되었습니다. 첫째 사건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를 경배한 것이고, 둘째 사건은 바로 오늘 요르단강에서의 예수의 세례이고, 셋째 사건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술로 바뀌는 기적 사건입니다.

주님공현대축일 다음 주일에 배치된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께서 단순히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이 세례를 통하여 예수께서 메시아요 예언자요 임금이며 종이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 역시 성령과 물로 세례를 받고 거룩하게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점에 대해 나지안즈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전에, 또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먼저 요르단강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령과 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물에서 나오실 때 당신과 함께 온 세상을 들고 올라오십니다. 그리고 낙원의 문들이 불 칼로 닫히듯, 아담이 닫아 버려, 아담 자신과 모든 후손들이 못 들어가게 한 그 하늘이 갈라지고 열리는 것을 보십니다.”

또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는 강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요르단강에 들어가십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증언해 줍니다. 오늘, 성령께서는 비둘기의 모양으로 물 위에 내려오시어, 노아에게 세상의 홍수가 가라앉았다고 전해 준 그 비둘기처럼, 이제 온 세상의 난파가 영원히 끝났음을 알려 줍니다. 그 옛 비둘기는 다만 올리브 가지를 물고 왔지만, 이 새 비둘기는 새 조상인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올리브 기름을 풍부히 부어 줍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에 우리의 세례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물의 상징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었습니다”(갈라3,27).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의 자녀로써의 품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비록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상황에 늘 처해 있고, 죄로 쉽게 떨어지는 본성의 유혹 중에 살고 있지만,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성령과 하나가 되었고, 나를 따로 떼놓으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일으켜 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수도원에서는 일 주일에 한번은 "비빔밥"을 먹습니다. 밥과 나물과, 고추장과,,,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참기름이 조화를 이루어, 색깔도 좋고, 맛도 좋은 비빔밥이 탄생합니다. 얼마나 잘 비비느냐에 따라서, 고추장과 참기름이, 밥과 나물에 골고루 스며들어 환상적인 맛을 냅니다. 나중에 비빔밥에서 고추장이나 참기름을 따로 분리해 낼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료들이 골고루 섞여 하나의 비빔밥이 완성됩니다.


우리 수도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수도자들은 '서원'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축성됩니다. '축성'이라는 것은 어떤 감투를 더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례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된 그리스도의 생명을 더욱더 충만하게, 삶을 통해 살겠다는 또 다른 부르심인 것입니다. 축성이란, 세속적인 용도의 쓰임에서 떼어낸다는 소극적 의미와, 하느님만을 위해 사용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함께 내포한 말입니다.

세례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이 서원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더 자유롭게, 더욱더 완전하게 하느님만을 위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묵은 인간을 세례의 물로 씻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또한 서원을 통하여 우리에게 온전히 하느님을 섬기는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서원을 통하여, 또 사제 서품을 통하여, 나와 다른 어떤 겉 껍데기나, 감투를 하나 더 덮어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삶, 수도자로써의 삶, 사제로써의 삶이 마치 비빔밥처럼 그렇게 섞여서, 어떠한 경우에도 분리할 수 없는 그러한 새 사람으로 변모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성령의 이끄심에 우리를 내맡기며, 그리스도인의 품위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이 축일에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4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