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을 방문하는 손님들이나 피정을 오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매우 자랑스럽게 “김천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히 저는 삼산이수의 고장인 제 고향 김천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영 시원찮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거기가 어딘지 되물어봅니다. 지난번에 한 아이는 제게 “수사님! 수사님 고향이 어떻게 김천이에요? 거긴 김밥 파는 김밥 천국이잖아요?”하고 대답하여 저를 매우 곤란하게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도 제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 역시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출신은 “나자렛”입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나자렛이란 동네는 매우 작은 시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나자렛이 속해 있는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을 매우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이처럼 갈릴래아 지방조차 당시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곳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갈릴래아 지방의 자그마한 마을인 나자렛이란 마을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들어보지도 못한 그런 매우 작은 시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예수님께서 나자렛 출신이란 말에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놀랍게도 이런 자그마한 마을에 사는 시골 처녀에게 당신의 천사를 보내십니다. 요셉이라는 가난한 목수와 정혼한 처녀인 마리아에게 당신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그녀를 구세주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어머니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수도 예루살렘의 그 유수한 가문의 처녀들을 제쳐 두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천대받기까지 하는 고장인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란 자그마한 마을에서 인류의 구세주가 될 당신 아드님의 어머니를 택하셨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뜻에 대한 인간 마리아의 즉각적인 응답입니다.

그녀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신을 구세주의 어머니로 택하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잉태하여 그것도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을 것이란 천사의 말에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뜻이 이루어지길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처녀가 아들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위험해지는 일입니다. 마리아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길 기꺼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가 가난한 여인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진 이 일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이며 가장 고마운 일입니다. 한 여인의 순종이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기꺼이 하느님을 위한 봉헌물로 내어놓았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섭리로 가난한 시골 처녀인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 그녀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으며 인류의 구원을 위한 신앙의 모범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섭리는 결코 마리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을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을 때 인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섭리가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어놓음과 순종은 우리 안에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내어놓음과 순종은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시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기다리는 이 지상 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명에 충실할 때 이 땅 위에서 온전히 하느님 나라가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신앙이란 구세사 안의 조연이 아닌 주인공들임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 안에서 보다 충실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보십시오,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루카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