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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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2주일(나해): 박 안셀모 신부 07-10-14 00:12: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48   
사순 2주일 강론

베네딕도의 여러분 오늘은 사순 제 2주일 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높은 산에서 제자들은 스승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체험합니다.

“랍비,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주는 영광에 익숙해 있던 제자들은 자신이 체험한 주님의 영광이 바로 수난임을 인식하지는 못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느님이 더욱 하느님이심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볼 산에서의 하느님 체험은 십자가 위에서의 하느님 체험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오르고자 하십니다. 그분의 이끄심에 우리자신을 맡겨드립시다.

그분의 영광스런 변모가 바로 우리의 변모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닮아갑시다.



강론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산으로 오르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먼저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산에 오르는 아브라함,
당신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암시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다볼산에 오르는 예수님,
그리고 산 위에서 등장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위해 시나이 산에 오르는 모세,
하느님의 인도로 호렙산을 오르는 엘리야를 만나며,
나아가 수난을 위해 골고타를 오르는 예수님,
그리고 천상 예루살렘에 오르기 위한 도정에 있는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이러한 장면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우리는 고통과 영광이라는 두 개념이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고뇌에 찬 아브라함은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축복과 자손, 땅의 약속이라는 영광스런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집트의 압제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로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소유,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가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을 쳐 죽인 후, 이세벨에게 쫓기어 죽을 위험에 놓인 엘리야는 야훼 하느님의 인도로 호렙산에 올라 조용하고 여린 바람 가운데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고통 후의 영광이 아니라, 영광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을 만나게 됩니다.
세명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다볼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고, 과거에 산위에서의 영광에 참여했던 모세와 엘리야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 나눈 이야기는 앞으로 예수께서 당하게 될 수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죽었듯이 예수님 역시 산위에서 죽을 것이며, 엘리야가 승천했듯이 예수님도 부활하시어 천상 예루살렘으로 오르실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 다볼산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영광을 함축합니다.
마치 우리가 존경하는 아버지들의 주름살과 갈라진 손마디에서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 숭고한 삶을 보듯이, 검은 수도복을 입은 연로한 수도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일생을 하느님을 찾기 위해 자신을 버려온 삶의 고뇌를 보듯이 말입니다.
세상이 주는 영광과 달리 하늘이 주는 영광은 자신을 버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인 듯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
사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다양하게 겪게 되는 고통 앞에 무기력합니다.
때로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다가올 죽음의 고통 앞에서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라고 기도하실 만큼 인간적이셨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인생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무기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고통을 없애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통을 하느님께 돌려드렸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묻는다는 것은 그분에겐 어쩌면 하느님께 대한 불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에게 있어 부활은 고통과 죽음 후가 아니라,
고통과 죽음 가운데서 핀 꽃입니다.
그것은 고통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생명이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그분이 겪으신 것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두고 요한은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은 자신의 이기심에서 생겨났든지,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 왔던지 간에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하나의 통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의 한 가운데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도록 오늘 복음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스런 눈으로 일상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으로 얼룩진 가시관의 얼굴, 이 얼굴에서 과연 우리는 영광을 보고 있습니까?
다볼산의 영광 안에서 감추어진 사형수의 처절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까?


주님처럼 변화되기를 원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고통과 영광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고통과 영광이 하나 되는 자리인 다볼산으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의 얼굴이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를 고난과 영광이 함께 하는 높은 산으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살고 있는 현실의 평지를 잠시 뒤로하고 높은 차원의 다른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장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너무 익숙해 있습니다.
자동차 소리, TV 소리, 정치 사회 경제 돌아가는 소리, 돈에 목말라 하는 소리, 남편의 큰소리나 아내의 잔소리까지도 말입니다.
우리는 잡다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지치고 짜증내면서도 일상이거니 하며 살아갑니다.
지친 얼굴이 사순절이면 더욱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사순절은 근심을 띈 우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기간입니다.

원초적인 소리,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얼굴은 빛납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인간의 소리를 끊고, 하느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고독 가운데, 고요 속에 자신을 맡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소리를 듣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높은 산, 그곳은 높기만 한 곳이 아니라,
어쩌면 외로운 곳 고독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소리가 끊긴 곳, 그 적막 속에서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높은 산으로 가서 고독에 잠겨 봅시다.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어루만질 수 있도록 내맡겨 봅시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만지려하고, 새로운 것만 쫓다보니 우리를 어루만지시는 그분의 손길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내맡기지 못합니다.
현세의 영광만을 찾습니다.
주님의 기준에서 고통 가운데 숨어 있는 참된 영광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주님과 함께 오른 높은 산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우리의 얼굴 또한 예수님의 얼굴처럼 빛날 것입니다.
예수의 빛나는 얼굴은 그분의 내면에서 발산하는 빛입니다.

그 빛은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빛입니다.
그 빛은 예수의 얼굴만이 아니라 그분의 온몸을 빛나게 하셨습니다.

사순절의 얼굴은 영광의 얼굴입니다.
그 얼굴은 고통에서 빛나는 영광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자비의 얼굴입니다.
그러나 영광의 얼굴은 베드로처럼 산 위에서만 머물고자 하지 않습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굳은 얼굴을 자비의 얼굴로 변화시켜 주는 기간입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베푼 만큼 얼굴이 가꾸어 집니다.
아무리 얼굴을 꾸민다 하더라도 이웃에게 열려 있지 않은 얼굴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순절의 얼굴은 우리의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손길을 가진 그런 사람의 얼굴입니다.

소화 데레사는 다볼산의 영광을 묵상한 후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사랑으로 산다는 건
다볼산에 천막을 치는 게 아니고 /
십자가를 보화인 양
주님과 함께 갈바리아 등성 길을 오르는 것 /
시름은 가져진 하늘 나라엔
나 마냥 즐거이 살터이매
가르멜에서 괴로움을 얼싸안자
사랑으로 한 생을 살아가리다.

이제 우리 잠시 침묵 가운데 데레사 성녀와 같이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세상이 주는 영광이 아니라
하늘스런 영광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날마다 당신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시고,
산을 내려와 당신으로부터 받은 영광을
이웃들과 나눔을 통해 당신의 사랑 받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를 당신 닮은 모습으로 변화 시켜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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