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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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3주일(나해) 서울 봉헌회 강론: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00:15: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49   
사순 제3주일(03.3.23) 서울 봉헌회 강론
복음: 2,13-25

“예수의 분노와 성전의 의미”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상인들이 상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십니다. 아마도 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분노한, 과격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평소 온유하고 자애로우신 예수님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왜 이토록 분노하셨습니까? 직접적인 이유는 하느님의 집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전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 예배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이런 분노는 하느님께 대한 열정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인간적인 증오나 미움에서 나오는 분노는 상대방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파괴합니다. 반면 사랑에서 나오는 분노는 정의와 평화를 꽃피게 합니다.

복음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유대인들과 예수의 동문서답이 이어집니다. 마치 선문답과도 같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이런 행동을 하느냐고 예수께 묻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에도 여전히 동문서답입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성전은 건물이었던 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곧 당신 몸이었습니다.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현존의 장이자 하느님 만남의 장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옛 성전은 구약의 성전을 뜻합니다. 이것은 구체적 장소와 건물에 한정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반면 새 성전은 신약의 성전, 곧 예수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 되십니다. 이제 부활하신 그분의 인격 자체가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이 됩니다. 성전은 이제 더 이상 특정한 장소와 건물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모든 곳이 곧 성전이 됩니다. 물론 하느님과 우리와의 만남의 장으로서 어떤 구체적 공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장소와 건물이라도 하느님이 현존하시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때 한국교회 안에 성전건립 붐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배 공간 확충이란 현실적 필요성에서 생겨난 성전건축이 너무 도를 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필요 이상의 초대형 성당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속속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고급 자재로 지어지고 일류 예술품들로 장식된 거대한 성당들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예술적인 즐거움을 더해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하느님을 위해서 지어진 것인지, 그렇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과연 기뻐하실 지는 의문입니다. 또 거기에 과연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곳이라 사회적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께서 불편해하시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성전은 어떤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안에 모시고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은 성령이 머무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살아있는, 아니 살아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크고 화려한 성당, 아름다운 성당은 그 자체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닐지 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반드시 하느님이 현존하신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유럽에는 천년 이상 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인 걸작품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그 성당들을 건립할 당시에 나름대로 모두 하느님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예들과 백성들이 동원되었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만 됐습니다. 그러한 성전들을 건립하고서 기뻐한 것은 과연 누구였겠습니까?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들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 앞에서 그 예술적 가치와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하느님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낳은 위대한 업적만을 기리고 있는 셈이지요. 지금 그 성당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조금 알려진 성당은 모두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기도하고 싶은 분위기나 공간을 도무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느님의 집이 이제 관광객들의 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예술품을 감상하고 구경하는 박물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은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모든 곳입니다. 만일 우리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놓는다면 우리 삶 자체도 하나의 보이지 않는 성전이 될 것이다. 우리 각자가 성령이 머무시는, 하느님이 현존하시는 하나의 성전이 될 때,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증오와 대립, 폭력과 전쟁이 자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늘 깨끗이 유지해야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세례를 통해 성령의 거처가 된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화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악습과 악행으로 이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그러면 예수께서 친히 우리를 정화하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온갖 미움과 증오, 탐욕을 씻어내야 합니다.

흔히 이 성전정화 이야기는 정의를 위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제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비약이란 생각이 듭니다. 예수의 반응을 두고 단순히 그분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반응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분노였지 폭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떠한 명분 하에 행사되는 폭력과 전쟁도 복음의 이 구절로써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다른 편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전쟁 역시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라크에 대한 이번 폭격과 전투에서 희생될 대부분은 어린이들과 여성들과 노인들이라고 합니다. 21세기 벽두에 미국에 의해서 두 번째로 저질러진 일방적인 전쟁입니다. 반전 평화를 외치는 국제여론과 국제법을 무시한 강대국에 의한 이번 전쟁은 분명 인류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대가를 안겨줄 것입니다. 끊임없는 증오와 보복, 폭력과 테러의 악순환을 낳을 것입니다. 이러한 폭력과 전쟁은 21세기, 소위 대화와 상생을 특징으로 하는 문명의 시대를 다시 강자의 논리에 따라 약자를 짓밟고 재배하는 약육강식의 시대, 곧 야만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심경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지금 이 상황에 처하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분은 분명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의 잣대로 남을 심판하고 단죄하지 말라”고.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악의 축을 근절하겠다는 호전적인 의지를 이미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현실로 옮기고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대화를 외치던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로써 참된 악의 축이 누구인지 그 실상이 드러났다고. 이번 전쟁을 긴밀히 모의했던 미국, 영국, 스페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의 이원론적 선악 구분법에 따른 다음 공격 목표가 어디일지 상상하는 것만도 끔찍합니다. 우리는 모든 폭력과 전쟁, 테러를 반대해야 합니다. 전쟁과 폭력, 테러가 있는 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현존은 없습니다. 모든 전쟁과 폭력 등에는 대개 다 이권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상업적인 목적이 밑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 이런 불의에 분개하실 것입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더 이상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그리고 무차별한 폭격으로 인해 지금도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이라크 백성들이 다시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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