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3주일 강론

사순시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에 걸맞게 살고 있지 못한 우리들 입니다. 무엇인가를 쫓아 바쁘게 살아가지만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순시기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시기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세상 그 어떤 것에서도 맛볼 수 없는 부활의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모세의 소명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불타는 떨기나무에 나타나시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해방시킬 것을 약속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몇 해 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수도원의 잔디를 태우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잔디를 태우다 불이 옮겨 붙어 작은 나무 한 그루가 홀랑 타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하던 수사님들은 수도원 화제이후 불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첩하게 움직였으나 그 불은 순식간에 나무를 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나마도 다른 나무에 옮겨 붙지 않은 것에 감사했습니다.

나무가 한참 타오르는 긴박한 상황 중에도 저는 떨기나무가 생각났습니다. 소화기를 들고 뛰면서도 저 나무도 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화기를 들고 나왔을 때 이미 그 나무는 재 무더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 독서에서 사건의 중심은 나무가 아니라 불이었습니다. 나무가 특별해서 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이 특별하여 나무를 태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떨기나무위에 얹혀진 불은 그냥 불이 아니었습니다. 그 불은 하느님의 현존이었습니다. 자신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불이지만 떨기나무는 나신의 몸에 불이 얹혀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면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순종으로 아기예수님을 맞아들인 성모님 같이 떨기나무는 하느님의 불을 받아들임으로 이제 아주 특별한 떨기나무가 되었습니다.

독서에서 성별된 나무가 등장하는 것과 달리 복음에서는 골칫거리 나무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입니다. 주인이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지만 그 나무는 삼년째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포도밭 주인은 그 나무를 베어버리려 하지만 재배인은 주인을 만류합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여기서 무화과나무가 심겨진 곳은 바로 포도밭이었습니다. 주인은 무화과나무를 포도밭에 심었습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복 받은 나무였습니다. 포도밭에 심겼다면 거름도 풍부했을 것이고 주기적인 물 공급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제 자신이 아닌 다른 환경을 탓 할 수도 없습니다. 황량한 들에 심겨진 나무들 보다야 훨씬 열매 맺기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삶을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분에 넘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부모 이상으로 나를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이시지만 우리는 그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비옥한 토지에 자리잡았고 끊임없이 관리를 받고 있지만 우리는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포도가 아니라 무화과냐고 투정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꽃도 없고 열매도 형편없는 무화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화과나무는 바로 주인이 심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3년 동안 그 무화과나무를 주의깊게 보셨습니다. 우리는 포도밭에 심겨진 유일한 무화과나무이며 동시에 주인의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있는 나무입니다.

재배인에게 그 무화과나무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주인이 심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포도를 키우고 수확해야 하는 실무자인 재배인에게 어정쩡하게 끼어있는 무화과나무는 자신의 본업 이외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자르려고 하자 재배인은 주인을 말립니다. 무화과나무는 다시한번 기회를 얻었습니다. 불이 떨기나무를 재로 만들어버리지 않은 것처럼 포도재배인도 무화과나무를 땔감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재배인은 평소의 몇 배의 수고를 들여 무화과나무 주변을 파고 거름을 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사순시기가 바로 재배인이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는 시기가 아니겠습니까!!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달콤한 것은 그에 합당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열매 맺기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과 함께 하느님 보시기에 사랑스런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달고 있는 시기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나무는 일년내내 고생해서 맺은 열매를 영글자마자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내어주거나 땅에 떨어트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잘 크는것에 기쁨을 느끼고 요리사는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직접 행복의 요소를 가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을 향한 내어줌을 통해 얻는 기쁨이 더욱 큰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일이란 원래 남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내어주는 기쁨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