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526. 본원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도교만의 고유한 교리로서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성으로 하나의 본체이신 하느님이 위격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구분된다는 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는 이론적인 사색에서 나온 정의라기보다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단어로써 초기 신앙인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알아보는 하느님은 실제 하느님이고, 신앙인들 안에 숨결로 살아계신 성령도 실제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대단히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체험은 아주 단순명료합니다.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시다. 나는 그분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영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그분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것이 삼위일체 체험의 전부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임’의 경험이 일체의 경험이고, ‘따로임’의 경험이 삼위의 경험인데, ‘하나임’과 ‘따로임’이 동시에 경험되어지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당신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또 하느님은 성령을 우리 안에 주셔서 그 숨결로 우리가 당신의 자녀 되어 살게 하십니다. 삼위일체는 이렇게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1요한 4,6)이십니다.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하나이신 것은 바로 그분들이 나누시는 완전한 사랑 때문입니다. 삼위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룹니다.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고 하나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은 어느 누구도 끊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나누시는 사랑을 생활하도록 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사랑으로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너와 나, 우리가 구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 사랑, 하느님과 인간, 자연이 사랑으로 묶여지는 일치를 이루도록 합시다.

현대는 철저히 파편화된 사회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예전에는 상부상조하던 일들이 이제는 돈이 없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돈이 중요해질수록 돈 버느라 관계가 단절되고 있습니다. 나만 잘 되려는 이기심과 남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와 너가 분리되어 있고, 나와 나 자신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일치를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일치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삼위일체는 나와 너의 대립이 폐기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서로 일치하는 궁극적 통일을 뜻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하나 되어 함께 살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내 자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서로를 묶어주는 사랑이 지금의 나를 형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서로를 위해 주고받아야 하는 밀물, 썰물과 같은 관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너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마음의 완고함”이나 ‘무사유’는 서로를 분열시킵니다. ‘마음’만 있으면, ‘생각’만 있으면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셨듯이, 우리 역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때 사랑으로 서로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 안에는 사랑의 성령께서 살고 계십니다(2코린 13,1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서로 타자의 입장에 서서 자신을 내어놓는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곳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이 넘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코린 13,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