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제정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면서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신 그의 사랑에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 우리들이 우리의 몸과 피를 내어놓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당신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느님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다면 뱉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면서 이 미사를 드리도록 합시다.

Homily

Introduction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기적 이야기가 나오는 마르첼리노 성인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강론 주제를 ‘사랑의 기적’으로 이야기할까 합니다.

A

십여년전에 신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올라갈 때의 일입니다. 신학교에서 학사 논문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당시 석사논문도 짜깁기 식으로 여기 저기 빼겨서 제출했는데 학사논문이야 오죽하였겠습니까. 그저 형식적으로 장수만 채워서 제출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때 쓴 학사논문 주제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나타난 사랑에 관한 연구’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청년헤겔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에 살았다. 그때 프랑스에도 많은 수도원들이 있었다. 수도원들의 담장이 높았고 그 안에 있는 수도자들은 뚱뚱한 몸매를 가누지 못해 뒤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음식이 나올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수도원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끼니를 그르고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나폴레옹이 청년헤겔이 살고 있는 동네를 수많은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지나갔다. 헤겔은 그러한 그를 보고 ‘위대한 인물이 들어온다’고 외쳤다. 이제 높은 수도원들의 담장은 허물어지고 배고픈 사람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리라 믿었다. 당시 개신교 신학생이었던 헤겔은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세상을 해방시킨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청년헤겔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는 부조리한 세상을 해방시킬 수 없다고 이내 단정지었다.”

B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톨릭인인 우리들은 성체성사의 기적을 믿습니다. 미사 때 사제의 손으로 거행되는 성찬의 전례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로마군인들에게 잡히기 전날 성 목요일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이내 내 몸이다. 이내 내 피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온전히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매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보시면서 한줌도 안되는 권력이라도 있으면 거드름을 피웁니다. 몇푼 안되는 재물만 있어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으스댑니다. 쥐꼬리만한 명예만 있어도 거들먹거립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온전히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비웃는 사람은 여기에는 없을 겁니다.

A'

1517년 10월의 마지막 날 마르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그 성당 문 앞에다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지적하는 95개조 조항을 붙였습니다. 비대해져가는 교회, 세속과 단절된 교회, 형식적이고 보여지기만을 원하는 교회, 안하무인격인 교회의 부패상을 낱낱이 까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외치면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왜곡시키고 먹칠하고 교회에 빌붙어 사는 이들을 적나라하게 지적했습니다.

Conclusion

십여년전 학사논문에서 결론을 이렇게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청년 헤겔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사람의 이성, 위대한 정신이다. 사람이 지닌 이성인 정신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혁시킬 수 없다. 그러나 헤겔은 예수님이 자신의 몸과 피를 인간에게 내어준 그 사랑, 그 비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장 모순덩어리인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만으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부조리한 세상 안에 감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침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성체성혈 대축일인 오늘 예수님은 그를 따라온 수천명의 군중들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신 기적을 행합니다. 그 기적을 우리는 믿고 따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살과 피를 온전히 내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