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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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나해):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00:17: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73   
성 목요일 주님 만찬미사 강론(03.4.17)

제1독서: 출애 12,1-8.11-14
제2독서: 1고린 11,23-26
복 음: 요한 13,1-15

지금 우리는 빠스카 성삼일로 들어가는 주님 만찬 미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례는 빠스카 신비의 핵심에 있는 사랑의 본질을 잘 드러내줍니다. 특별히 우리가 거행하게 될 ‘발 씻는 예식’은 사랑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 예식의 의미를 되새겨 봄으로써 사랑의 본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제1독서는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의 마지막 식사, 곧 빠스카 밤의 식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어린양의 피를 통해 이집트에서 탈출하였습니다. 이집트 탈출은 노예살이로부터의 해방을 뜻합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집트 노예살이에서의 해방 기념이 이제 예수께 대한 기념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십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 친히 빠스카 어린양이 되십니다. 이로써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약에 따른 새 계명을 주십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계명이 뜻하는 바를 잘 밝혀 줍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사랑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첫째, ‘섬김’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섬김과 봉사입니다.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친히 당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종이 되어 제자들을 섬기십니다. 그럼으로써 사랑의 구체적인 본보기를 보여주십니다. 발 씻음은 이런 사랑의 참 의미를, 즉 사랑의 구체적 표현은 섬김임을 잘 드러냅니다. 당시 발을 닦아주는 일은 노예들에게 맡겨진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주인도 또 어떤 랍비도 자기 종들이나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의 주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제 발만은 절대로 못 씻으십니다”(요한 13,8a) 하고 완강히 버팁니다. 그러나 사실 발을 씻음은 스승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또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1요한 4,19). 어쨌든 사랑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섬김은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남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 주인이 종의 자리를 취합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낮아짐을 뜻합니다. 낮아짐, 즉 겸손은 섬김의 전제조건과도 같습니다. 낮아질 때, 몸에서 가장 더러운, 그래서 씻음이 필요한 발을 씻어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낮아질 때, 남의 필요에 민감히 응할 수 있습니다.

셋째, 사랑의 또 다른 요소는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기희생을 뜻합니다. 사랑은 막연한 감정이나 감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자기희생이 전제됩니다.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자신을 그리스와 함께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이런 내어줌 없는, 자기희생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세족례는 바로 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 그분은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십자가 죽음 안에서 그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물로써 제자들의 발을 씻음은 곧 있을 수난과 죽음, 곧 피로써 우리 모두의 죄와 허물을 씻으심을 예시하시는 듯 합니다.
결국 섬김과 낮아짐, 그리고 내어줌, 이 세 가지는 바로 사랑의 본질적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요 선생인 내가 그대들의 발을 씻었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요한 13,14). ‘서로 발을 씻어 주라’는 예수의 이 권고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위에서 본 사랑의 본질적 요소들을 토대로 아마도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밑으로 내려와서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지배와 군림이 아닌 사랑에 바탕을 둔 섬김과 봉사로의 초대인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만이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섬김을 받기는 쉽지만 섬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자신을 비우지 않고서는, 겸손하지 않고서는,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섬겨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바로 ‘자신을 버리고 겸손되이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다음, 애정 어린 세심한 관심과 배려로 서로의 허물과 상처를 씻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죄로 얼룩진 우리의 허물과 상처를 당신 피로써 씻어주셨듯이 우리도 격려와 관대함으로 서로를 키워주는 것입니다.

끝으로 상대방을 돌보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이 정화하는 것입니다. 초기 교부들은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흔히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곤 하였습니다. 즉 죄와 악습의 노예살이, 곧 헛된 욕망들의 지배를 받던 옛 생활로부터의 벗어남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하였듯이 우리도 부단한 자기정화를 통해 죄와 악습들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정화가 선행될 때, 우리 안에 이웃을 사심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그들을 겸손되이 섬길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어 우리를 죽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분은 온 몸으로 이러한 사랑의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사랑을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주기는 힙듭니다. 우리가 만일 예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이 위대한 사랑의 모범을 따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곧이어 있게 될 발 씻는 예식을 통해 주님 사랑의 깊은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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