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대림 제4주일

마태 1,18-24

자녀를 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세 가지 힘을 아십니까! 바로 본인의 체력, 어머니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여기에 두 가지가 더해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동생의 희생과 아버지의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좋은 대학에 아이를 끼워 넣으려니 남들보다 빠른 정보가 필요하고 사교육비가 많이 드니 아버지의 경제력으로는 부족하여 조부모부터 쌓아온 재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둘 다 공부시키기 어려우니 동생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조건들 사이에 “아버지의 무관심”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합니다.

야자와 학원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자녀들을 보며 아버지는 말합니다. “이러다 애 잡겠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말합니다. “이게 나좋으라고 시키는 줄 아냐!”, “다 아이를 위해서다.” “그런 약한 소리하지마라.”

자녀들이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에서 눈을 돌리게하는 아버지의 관심이란 접어두라는 말입니다. 수험생 가족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대다수의 아버지들의 역할은 현금인출기 기능으로 추락한다고 합니다.

권위 있던 아버지의 모습은 옛날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불호령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습니다. 예전의 지휘를 보장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은 아버지에게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주중에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고 주일에는 가족들을 위해 여행을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시대에 뒤떨어지며 능력 없는 아버지로 평가됩니다. 아버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도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는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이제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아련한 슈퍼맨이 아니라 진짜 슈퍼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버지의 이러한 역할을 당연시 여기고 아버지의 존재를 소홀이 여깁니다.

그리고 여기에 때때로 우리가 소홀히 여기고 당연시 여기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바로 요셉 성인입니다. 어머니 마리아 못지않은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성모님의 그늘에 가려 언제나 뒤로 밀려나 있는 아버지입니다. 부계사회였던 고대 근동지역에서도 요셉 성인의 역할이 왜 이토록 부각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분명 성모 마리아는 순종의 모범을 보여준 성인으로 최고의 공경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하지만 만일 요셉 성인의 순종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당연히 여기고, 그래서 소홀히 대하듯 아버지 요셉 성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기에 성모님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태중에 주님이 들어서는 기적을 직접 체험했지만 요셉은 아니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기적을 간접으로 체험할 뿐이었습니다. 자신과 같이 살기 전에 약혼녀가 임신을 하다니요. 이런 천청벽력 같은 소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셉 성인의 입장에서는 의심에 의심을 더했을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 성인은 꿈에 나타난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받아들입니다. 자유의지에서 우러나온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직한 믿음, 바로 아버지다운 믿음이었습니다. 요셉 성인은 이 믿음으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고는 마리아와 예수님의 보호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구원계획의 협조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요셉 성인에게 다른 것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임마누엘”의 신비,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예언자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구원계획의 절정에서 요셉 성인은 자신의 역할을 든든히 해 냅니다. 자신의 역할이 드러나든 드러나지않든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님의 탄생에 협력할 수 있는 것이면 됩니다.

요셉 성인이 합당한 공경을 받지 못한 데에는 성인의 탓도 있습니다. 성모님처럼 부지런히 발현하셨더라면 분명 많은 공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기서도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모님이 나서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어머니들처럼 어쩔 수 없이 나서는 것일 겁니다. 그러고보면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은 한국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에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와 그의 배필에 성 요셉일까요? 구세주의 부모님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으니 우리는 참으로 복된 민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복음을 통해 아버지 요셉 성인의 공경에 대해 다시금 묵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기억합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하느님께서 손수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