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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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2주일(나해): 인 끌레멘스 신부 07-10-14 00:20: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20   
2003년 5월4일 부활2주일 나해

지난 부활밤 우리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주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기쁨은커녕 기쁨과는 정반대로 슬픔과 고통 중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니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 가운데 서 계시는 주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첫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무서워서 떨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제자들은 큰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래아에서 위대한 예언자인 예수님을 만나 자신들의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예수님과 함께 3년 내내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따르던 메시아가 십자가형에 처해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제자들의 희망과 꿈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희망이 큰 만큼, 받은 상처와 아픔도 더욱 큽니다.

제자들이 알던 메시아는 승리의 메시아, 권세와 힘의 메시아, 곧 군주 중의 군주였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한 메시아는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 메시아는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사람들을 죽이는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아가 로마 세력과 결탁한 이스라엘의 지배층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제자들은 실망을 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을 것이고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그 만큼 아픔도 더 컸을 것입니다. 메시아의 죽음은 상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상처 자체였습니다. 왜냐면 제자들이 당한 상처의 원인이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처 자체이신 분이 제자들 눈에 다시 나타났으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건이나 자기 자신의 죄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 상처를 다시 입지 않기 위해 자동적으로 생기는 자기 보호, 자기 방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두려움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두려움은 상처받은 사람을 억압합니다. 상처로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불안한 사람입니다. 또 이 사람은 자신 안에 갇혀 전전긍긍하는 사람이고 상처를 보기 두려워 눈을 감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두려움을 이기는 참 평화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두려움 때문에 눈을 감은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나타나시어, 첫 인사로 “여러분에게 평화”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상처이신 분께서 상처받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빌어주십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신 주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평화라는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두려움에 갇혀 있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또 주님께서는 손과 발을 내미시면서 당신의 상처를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의 상처를 똑바로 보면서 자신들의 상처를 볼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평화의 눈으로 주님의 상처를 통해 자신들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알게 모르게 결코 남한테 밝힐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상처 때문에 한 발자국도 못나갈 때가 많습니다. 실패할까봐 또 상처를 입을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포자기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 상처를 통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바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성체와 성혈 안에 계신 주님이 우리 상처의 치유자이시고 우리를 끊임없이 새 삶으로 부활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영성체 때 상처 입으신 주님께 상처 입은 우리 손을 내밀어 그분 몸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상처 입은 이가 상처 입은 이를 치유하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주님께서 입으셨던 상처는 사람을 죽이는 상처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처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힘이고 부활의 새로움입니다.

루가 복음 첫머리에는 주님 때문에 상처 입은 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시메온이 성모님의 영혼이 장차 칼에 꿰뚫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주님의 수난과 고통에 성모님께서 동참하실 것을 미리 내다 본 것입니다. 제자들보다 먼저 상처 입으신 성모님은 상처입은 제자들의 전구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구자도 되십니다.

“오월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여왕이신 어머님, 기꺼이 아드님의 상처를 함께 받으신 어머님, 저희가 당신 아드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아드님의 상처로 저희 상처가 치유되게 전구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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