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일 강론 가해

(루카 24,13-25)

부활 제3주일인 오늘 교회는 복음을 통해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복음 메시지의 의미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영화 ‘건축학 개론’의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강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영화 안에서 건축학 개론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는 칠판에 서울시 지도를 붙여놓고 빨간 펜을 손에 쥐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 자, 봐봐!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여기 우리 집에서 38번 버스를 타고 요렇게, 요렇게 그리고 삼각지에서 143번으로 갈아타고 요렇게 여기 학교로 옵니다.” 교수는 설명과 함께 빨간 펜으로 자기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학생 하나하나를 불러내어 본인이 보여준 방식대로 학생 자신의 집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을 표시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교수는 각각의 학생들에게 무심코 지나쳐 버린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주위에 있는 건물들, 길들에 대해 환기를 시킵니다. 주소지 정릉에 살고 있는 학생에게 교수는 묻습니다. “정릉이 누구의 묘이지?” 학생은 당황하면서 우물쭈물 대답합니다. “정조?”, “정약용?” 교수도 웃고 학생들 모두가 웃습니다. 그리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영화의 주제와 맞닿을지도 모르는 숙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면서 건축학 개론 강의를 마무리합니다. “리포트, 지금 자기가 사는 동네를 여행해보는 겁니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골목들 길들 건물들 이런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보세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 개론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학문의 시작이 아닌 신앙의 시작이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학문의 시작이 영화 속의 건축학 교수 말대로 진리를 찾아 우리가 사물과 사건들에 다가가는 일이라면 신앙의 시작은 우리가 다가가기에 앞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먼저 다가오시는 예수님과 그분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모습을 예루살렘과 엠마오를 연결하는 길 안에서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안식일 다음날 예수님의 두 제자는 사흘 전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관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다고 복음서들은 말합니다.(마태 26,56; 마르 14,50) 어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였음을 두려워하여 숨어버리고(요한 20,19), 어떤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허무함과 실망감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요한 21,3). 오늘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 역시 예전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는 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의 몰이해는 복음서 전체가 꾸준히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세 번에 걸쳐 말씀하신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루카 9,22; 9,44-45; 19,31-34) 왜냐하면 제자들 각자에게는 수난과 부활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메시아가 이미 그들 안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엠마오로 길을 떠난 한 제자는 나자렛 예수의 신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루카 24,19-20)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제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참 아둔한 사람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굼뜨다니.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십니다.(루카 24,25-27)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과거에 자신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나자렛 예수의 참 모습 곧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이 예수님 현존에 대한 희망으로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부활한 자신의 현존을 드러내시기 위해 제자들 앞에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십니다. 떼어 나누어진 빵 그것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에게는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겠다 약속하셨던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신 예수님 자신을 상기시키는 표징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때 눈이 열려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전에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나자렛 예수는 이제 그들에게 토마의 신앙고백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8)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앙의 시작으로 제자들 안에 자리하심과 동시에 수천 군중 앞에서 자신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그들을 파견하십니다.(사도 2,14.22-33) 복음은 부활의 증인이 된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루카 24,3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신앙의 시작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먼저 다가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였기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분의 물과 피를 통해 죄의 용서를 받았으며 더 나아가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해 그리고 나누어진 빵을 통해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다가오셨듯이,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이에게 부어주신 성령을 통해 말씀과 성체성사 안에서의 빵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의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그리스도와의 일치 곧 영원한 생명을 여기서 미리 맛보며 그 완성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향한 신앙의 여정 중에 있습니다. 이 여정의 시작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이며 마지막 역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기에 항구하게 예수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 이것이 우리 신앙 여정의 이정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신의 희망이 사라져버린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듯이 우리의 신앙이 두려움, 괴로움, 질병, 상실, 죽음과 직면하여 굳음에서 연약함으로 내려갈 때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과 같이 그분은 홀로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면서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어 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일 안에서 먼저 다가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제자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 항구한 믿음을 청하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