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26주일

(마태 21, 28-32)

신부님들이 입는 수단에는 단추가 많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던 때 늦게 일어나 급하게 옷을 입다가 단추를 잘못 꿰어 낭패를 보았다는 신학생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방에서 나와 성당으로 뛰어가면서도 주섬주섬 단추를 채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천만다행으로 저희가 입는 수도복에는 단추가 없습니다. 수도복을 만드시는 수사님의 자상한 배려로 단추 대신 지퍼가 달려 있습니다. 수사님의 말씀인즉 혼자 사는 남정네가 단추 떨어지면 새로 달기 귀찮으니 지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바쁜 아침 급하게 수단의 단추를 채우다보면 하나씩 밀리는 것은 예사고 때로는 두 개씩 세 개씩 밀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바쁜 와중에 첫 단추를 잘못 끼었다면 그냥 밀린 채로 단추를 채우고 나간다고 합니다.

처음의 중요성, 첫 단추의 중요성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처음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실패인양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 복음은 첫 마음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바꾸어 처지가 달라진 두 아들의 비유 이야기를 전합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첫째 아들은 “싫습니다”라고 대답 하지만 결국은 포도밭에 일을 하러 갑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지만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의 응답과 행동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질문합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습니까?” 그들이 대답 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수 있는지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 전체가 무너진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입니다.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다기 보다 믿어서는 안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과 어긋난 그들은 점점 예수님과 멀어져 갑니다. 단추가 하나씩 둘씩 밀리더니 이제는 완전히 옷을 입을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고집을 부리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신분 때문에 꾸짖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처음 나타났을 때 보인 그들의 태도 때문에 꾸짖은 것도 아닙니다. 듣고도, 보고도 믿지 못한 그들의 완고한 태도 때문에 꾸짖으십니다. 오늘 1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악인이라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악한 행실 때문에 벌을 받는 것입니다.

처음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 할 순 없습니다. 처음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일이 계속 잘못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잘못됐어” 라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냉담에 빠지는 이유는 처음 지었던 죄에 대해 집착 때문입니다. “나같은 죄인 성당에 나가서 무엇하는가?”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성체를 모신단 말인가?” 라고 말하며 성당에서 멀어지는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처음의 죄에 집착하여 모든 일을 그르쳐서는 안됩니다.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버스를 놓쳤다고 해서 화내지 말라. 시간을 빼앗긴데다 마음까지 빼앗기면 손해가 너무 많다” 이전의 죄에 마음이 빼앗겨 지금도 하느님과 멀어져 있다면 손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강론 서두에서 신부님들이 입는 수단의 단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부님들은 수단의 단추를 잘못 채웠다고 해서 미사에 나가기를 주저하지는 않습니다.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제의를 입으면 잘못 채워진 단추는 제의에 가려져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제의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단추를 잘못 채워도 하느님 앞에 나아가면 그분께서는 은총의 제의를 입혀 주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자비와 은총의 제의로 우리를 덮어 이전에 우리가 잘못 꿴 단추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은총의 제의를 입기 위해서는 이전에 지었던 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그분의 제단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죄를 용서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