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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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나해):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00:30: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227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03. 6. 29) - 서울 봉헌회 강론

제1독서: 사도 12,1-11
제2독서: 2디모 4,6-8.17-18
복 음: 마태 16,13-19

오늘 우리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재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수도원의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의 축일입니다. 또한 여러 바오로, 베드로 수사님들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일년 중 가장 영명축일이 많이 겹치는 날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런 날 축일을 맞으시는 분들 사이에 이런 농담석인 넋두리가 있습니다. 즉 “내 축일은 그냥 묻어갔다.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저 같이 영명축일을 혼자서 맞는 경우는 그래도 주인공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데, 대축일에 가려 혹은 여러 사람들에 묻혀 그냥 도매금으로 넘어가니 억울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분들은 자신의 축일을 다른 조용한 날로 옮겨 특별하게 보이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저희 수도자들에게는 영명축일이라 해봐야 별로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축일을 맞는 사람에게는 전날 저녁식사 때, 맥주 2병과 계란 프라이 몇 개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식당 앞에서 전 공동체 형제들 한사람 한사람으로부터 축하인사를 받는 것이 고작입니다. 누가 축일을 맞으면 저녁식사 때, 가끔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는 재미있는 풍경도 연출됩니다. 그 사람과 가까이 앉으면 떡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어제도 아빠스님과 함께 축일을 맞은 7분의 형제들 가운데 상당수도 또 넋두리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로마 근교에 뜨레 폰타네(Tre fontane)라는 성지가 있습니다. 이 곳은 바울로 사도가 순교한 곳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바울로 사도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희광이가 그의 목을 베자 베어진 그 목이 땅에서 세 번 튀었는데, 거기에 세 개의 샘이 솟아나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 지명이 유래했습니다. 즉 세 개의 샘 혹은 분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로마 외곽으로 향하는 고대 로마의 도로를 따라 1km 정도 내려가다 보면 “도미네, 쿼바디스” 성당이 있습니다. 64년 로마 대화재 때 네로 황제는 기독교도들에게 화재를 일으킨 죄를 뒤집어 씌워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 사도는 박해를 피해 로마 밖으로 빠져 나가다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보고 “도미네, 쿼 바디스?”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인데, 우리말로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네가 버린 양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에 간다.” 그러자 베드로 사도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로마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후에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를 만났던 그 장소에 성당이 세워졌는데, 이 성당이 바로 도미네 쿼바디스 성당입니다. 이 성당 바닥에 그리스도의 발자국이라고 말하는 매우 커다란 발자국이 하나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결국 로마로 돌아와 현재의 바티칸 언덕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이 두 사도의 삶은 많은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두 분의 출신배경은 크게 다르지만, 두 분 모두 주님을 깊이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마침내 순교로 이끌었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인간적 나약함을 지녔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세 차례나 주님을 부인하였고, 또 박해를 피해 달아나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신앙 여정에서 여러 번 좌절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실망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 여정의 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계속 넘어지고 또 일어나 매번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 신앙은 더욱 더 굳건해질 것입니다.

반면 바오로 사도는 회심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박해하는 자에서 박해받는 자로 180도 돌아섭니다. 돌아선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불굴의 신앙으로 무장되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디모 4.7).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깊은 신앙과 강한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고백입니다. 어쨌든 이 두 분의 경우는 영적인 여정에서 있을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경우처럼 여겨집니다. 첫 번째 경우는 계속되는 좌절과 실패를 통한 승리이고, 두 번째는 초지일관 불굴의 신앙과 열정을 통한 승리입니다. 이처럼 두 사도는 서로 다른 여정을 거쳐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어찌 보면, 베드로 사도의 경우가 더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역시 나약함과 나름대로의 한계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은 우리가 보다 깊은 신앙과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런 희망을 보여줍니다.

저는 요사이 신앙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에게 과연 참된 신앙이 있는가? 평화로울 때는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닥칠 때,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요즘은 많은 신앙인들이, 심지어 성직자, 수도자들조차도 너무나 인간적인 눈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들과 어려움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그마한 어려움 앞에서도 쉽게 쓰러지고 도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눈으로, 즉 신앙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인 것 같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신앙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사랑에 바탕을 둔 깊은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자신의 독방에서 나오지 않고 45년간을 살았던 어떤 수녀님이 있었습니다. 이분도 바로 주님께 대한 불타는 사랑과 깊은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오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 신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분들이 피로써 증거한 고귀한 신앙을 계승하고자 노력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늘나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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