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금요일(다해)

＋요한 18,1-19,42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영성지능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의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는 우리를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깊이 일치하게 합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서 성부께 제물로 봉헌하시는 예수님의 극진한 사랑의 신비가 오늘 전례에서 현재화되고 있습니다.

요즘 자녀 교육에 극성인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학교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알파‘고’입니다. 이번 달초에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에서 생겨난 유머입니다. “프로기사도 이기다니… 알파고 학생들, 대단하다”, “알파고, 어디 있는 특성화고등학교인가요?” 등등의 유머도 생겨났습니다. 한 누리꾼은 알파고가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습니다.

알파고의 인공지능 구조 중 하나인 가치망(Value Network)은 현재 상황에서 ‘이길 확률만’ 점수로 뽑아냅니다. 또한 알파고의 학습 특징의 근간이 되는 딥 큐 러닝(Deep Q-Learning)에게 주어진 정보 중 하나는 ‘최고 점수를 내라’라는 목표입니다. ‘오직 승리만, 그것도 최고 점수로’라는 알파고의 인공지능구조의 논리는 처절한 패배와 최악의 실패, 처참한 죽음이라는 십자가의 논리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알고도 져 주고, 손해인 줄 알면서도 희생을 감수하며,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위해 자선과 죽음까지도 무릅쓰는 자비를 실천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이런 면을 알파고의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에 접목시키면 무척 흥미 있는 과정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바라 보는 사람」(Der Scahende)이란 시에서 “패자”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승리는 그를 초대하지 않는다. 그의 성장은 더욱 위대한 자에게 늘 비참한 패자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패자가 되는 것, 최후의 가장 비참한 패자가 되는 것에서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 바로 그것은 위대한 자가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릴케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일생동안 ‘제때’에, 그것도 운명론인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내적 동의로 의식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은 성령에 이끌린 예수님의 삶의 귀결이었고, 이 최후의 가장 비참한 패자가 부활로 최초의 가장 영광스러운 승자가 됩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사가는 십자가의 굴욕과 모욕이 곧 현양과 영광이요, 죽음이 곧 부활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불신자들이 모든 것의 끝장이라고 여기는 곳을 새로운 시작의 기점이요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서 피어난 새 생명입니다. 수난의 한가운데서도 부활의 생명이 드러날 수 있음을 요한복음의 수난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찾느냐?”(4절, 7절)는 예수님의 말씀에 성전 경비병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5절, 7절)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나다”(5절, 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수난기 서두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이 문답에서 “나다”라는 말씀은 모세에게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하신 말씀을 반복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분명하게 증언하신 예수님은 ‘넘겨짐’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찾는 주님은 ‘도성 안의 중심’인 왕궁이나 성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성문 밖 변방’ 길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우리는 수난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십자가는 자신이 아닌 돈이나 남을 제물로 바치는 사제에 대한 부정이요, 세상과 분리된 성전에 대한 거부입니다. 십자가가 상징이 아닌 삶이 되어야 예수님처럼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사제가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요한 4,23) 드리는 제단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능지수 IQ(Intelligence Quotient)를 중시하는 세상은 ‘가지고 쌓도록’ 재촉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잔머리지수’는 한국인이 최고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감정지수 EQ(Emotional Quotient)조차 매우 낮은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이란 가치를 살게 하는 영성지수 SQ(Spiritual Quotient)를 심화해야 합니다. 영성은 ‘버리고 비우며 죽임 당하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깊어집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 영성생활을 골고타 정상으로 인도합니다. 목표이시며 열린 오메가 포인트이신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배우는 최적의 학교인 십자가 밑에 선 학생이 됩시다. 그 때 바로 거기서 우리는 죄인과 원수를 위해서도 목숨을 바치는 또 하나의 예수로 부활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