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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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예수부활대축일 성야미사(가해, 2017.04.15) - 박 블라시오 아빠스 17-04-18 09:50: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43   

부활대축일 성야 미사 강론- 2017. 4.15.  

어제는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추워지면서 성 금요일스런 날씨였는데, 오늘은 모처럼 만에 하늘도 화창하고, 바람도 살살 불면서 새 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성주간 내내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 보았는데, 깡 마른 나무 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잎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연두색 새싹이 점점 진해지고, 새로 난 잎들이 엷은 초록을 띄게 변화되는 모습이 불과 열흘 안에 벌어진 일인 것 같습니다. 수도원 곳곳에도 며칠 전 부터 피기 시작한 꽃들이 활짝 만개하여 새로운 생명감을 물씬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신부님 한 분과 마주 앉아 15세기 러시아의 화가 안드레이 루블로프 Andrei Rublev 가 그린 삼위일체 이콘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이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유학 시절 그리스도론 시간에 사도신경에 나오는 저승에 가시어라는 제목 하나를 두고 한 학기 내내 공부할 때 알게 된 이콘입니다.

간혹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성금요일에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고, 안식일 다음날인 주일에 부활하시기 전에, 성 토요일에는 무덤에 계셨는데, ‘저승에 가시어는 무슨 말씀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여러가지 신학적 설명과 그 말의 의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강의였습니다.

그때 알게 된 이콘을 보면, 십자가를 손을 쥐신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셔서, 저승 문을 부수시고, 그 문짝을 발로 밟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손목을 잡고 그들을 무덤에서 나오게 합니다. 그 둘레에 옛적에 이미 죽은 엘리야와 모세, 아벨, 세례자 요한, 다윗, 솔로몬 등의 옛 성인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의 손목을 잡고 끌어올리시는데, 손목은 맥박이 느껴지는 곳이니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죽은이들을 죽음에서 살리시는 모습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이콘에서는 사탄을 발 아래 밟고 있는 장면도 나오는데, 죽음의 원수인 마귀를 굴복시키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저승에 가시어라는 신앙 고백은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고, 사도신경에만 나옵니다. descendit ad inferos 예전에는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지옥에 내리시어라고 표현한 적도 있고, ‘고성소에 내리시어라고 한 적도 있고, 1997년 부터 저승에 가시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어떻게 번역하든간에 저승은 성서에서는 죽은이들의 세계, 죽음의 세계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이 세계가 마치 공간적으로 아래쪽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하여 저승에 내리시어라는 표현 대신 저승에 가시어라는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승을 공간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말이 원래 지닌 내려간다는 의미를 풍요롭게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승에 가시어라는 표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음을 당하셨고, 죽은이들의 세계로 가셨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형태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당하는 똑같은 죽음을 예수님께서도 당하셨고,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초세기 때부터 신자들이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신, 그러니까 높은 데서 내려오신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죽음과 부활이라는 개인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모든 죽은이들까지도 구원으로 부르시는 분, 그래서 우리의 구원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저승에 가시어라는 말마디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과 같은 몸을 지니시고, 모든 사람이 한번은 죽게 마련인 죽음을 집접 겪으셨고, 그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삶을 통해서, 그리고 죽음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고, 죽음을 초월하여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죽음의 세력을 떨쳐 버리시고 다시 일어나심으로써 죽음에 대한 승리를 거두시고, 당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고, 심지어 죽음마저도 그 분을 어떻게 할 수 없음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내려가심과 올라가심을 우리도 그대로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되는 이유입니다. 생명과 죽음이 둘이 아닌 것 처럼, 내려감과 올라감이 둘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죽음과 미래의 죽음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를 산다고 하는 것은 이 구원의 역동성 안에서 우리가 매순간 부활의 사건을 체험하고, 부활은 증언하고, 다시 살아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죽음으로써 지옥의 문을 여시고,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향한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해 주신 그 사건을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는 기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3년 만에 올라왔습니다. 삼 년전 수요일에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배와 함께 어둡고 차가운 바다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바다 위로, 밝은 빛 속으로 올라왔습니다. 삶과 죽음이 동전 양면 처럼 하나의 사건이라고 말을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3년전 그 수요일에 그 시간에 멈춰져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배는 올라왔으나 그 진실은 아직도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현실과 바람이 일치하지 않는 이 자리, 진실과 거짓이 간격을 벌리고 있는 이 자리, 와야 할 것이 오지 않고 지체되어 있는 이 자리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는 자리, 그 부활 사건을 살아가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내일은 세월호 참사 3주년이 됩니다. 세월호가 물에 올라오던 날 강릉 하늘에 나타났던 노란색 세월호 리본 구름은 우리에게 희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죽은 이들까지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갖 부조리와 미움과 갈등이 만연한 이곳에서도 당신 구원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을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발견합니다. 십자가가 죽음이 아니라 구원을 내포하고 있고, 현실의 고통과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구원의 걸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밤 체험합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이 죽음을 향한 걸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 참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예수님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구원의 길을 함께 걸으며 그분 파스카 신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합시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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