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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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부활 제3주일(가해,2017.04.30) - 오 아브라함 신부 17-05-01 21:23: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99   

부활 3주일(루카 24, 13-35)

엠마오 가는 길에서 부활의 증인이 된 두 제자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란 높은 도시에서 엠마오라는 가장 낮은 지역을 향해 내려가는 길은 단순히 지리적으로 내려가는 길일뿐만 아니라, 두 제자의 삶이 희망 없이 땅 끝까지 추락하는 체험입니다. 엠마오따뜻한 샘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름과는 정반대로 절망적인 막장의 상황에 처한 두 제자에게 엠마오는 추운 사막이었을 것입니다. 엠마오 길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분께 걸었던 자신들의 희망이 물거품 되고 자신의 인생이 완전 실패로 돌아갔다고 여긴 제자들의 낙향길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 상황 역시 복음의 두 제자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계속되는 불황과 취업난에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80% 이상이 자신들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에서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라고 하더니 여기에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라고 자조했습니다. 급기야 최근 청년들은 가치 있는 다른 것도 다 포기해야 할 상황이란 뜻에서 스스로를 ‘n포 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대상은 두 제자가 처한 상황의 반영입니다. ‘(hell)조선이라 불리는 우리나라가 제자들이 가고 있는 엠마오입니다. 그런데 끝장이라고 여겨지는 가장 낮은 상황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나자렛 예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실패와 좌절의 맨 밑바닥 바로 거기서 희망과 신앙이 다시 태동되고 자리를 잡게 됩니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가까이 오시어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가심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라고 생각한다면 내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변화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 마음이 타오르게 하시고, 빵을 떼어주심으로써 제자들의 눈을 열어 부활하신 당신을 알아보게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에 참여한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몸을 나누어주심으로써 우리가 부활한 새 생명으로 새롭게 살아가게 해주십니다. 

미사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같은 빵과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신 우리 모두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분의 지체가 됩니다. 미사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주님과 일치된 우리는 그분의 말씀과 성체의 힘으로 파스카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오늘의 엠마오로 가는 나그네들의 길동무가 되는 것입니다. 미사는 오늘 여기에서 부활한 그리스도가 되어 살아가게 합니다 

미사는 영성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파견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파견은 끝이라기보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찬의 삶을 살도록, 즉 뜨거운 마음과 열린 귀와 눈으로 살도록 파견된 세상은 생계를 유지할 직업이 급격히 사라지는 무직사회’, 모두를 고립시키는 무연사회’,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무용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존을 부정당하는 세상에서 시장 만능주의를 추구하는 기득권층은 국민을 세대별, 진영별로 양분화시켜 서로 적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선진국이 아닌 선망국’(先亡國)이 되어가고 있는 한국에서 많은 이가 희망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파견된 사람들입니다. 파견은 언제나 사명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엠마오로 가는 나그네들에게 절망 대신 희망을, 한탄 대신 감사를 선택하도록 요청할 사명을 지닌 길동무들입니다.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음을 선포할 사명이 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진정한 만남으로 우리가 곧바로 일어서는 것, 이것이 우리의 부활입니다.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셨다”(34)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살아 있는 신앙 고백이 될 때까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살아 있는 증거자가 됩시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를 생명이 다시 죽음을 이기는 구세사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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