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 제6주일(가해,2017.05.21) - 고 이사악 신부 17-05-23 20:42: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07   


부활을 기다리며 6주간을 보냈고 부활을 맞이하여 또다시 6주간을 보냈습니다. 문득 일상을 되돌아보니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처럼 작년처럼 제 삶은 변화하지 않았고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녹음이 울창해진 수도원 정원을 보며 부끄러운 삶을 반성합니다. 산천과 강산은 조물주의 뜻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바꿉니다. 자연은 자기 살 뜻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와 죽을 자리를 알고 물러섰다가 때가 되면 다시 소생하여 온 천지를 생명의 기운으로 채웁니다. 풀섶의 미물들도 아는 이 생명의 이치와 창조의 질서를 인간만 모르고 삽니다. 

가끔 진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습니다. 과연 진리가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알아 들을까?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른 소리를 합니다. 명백히 밝혀진 사실마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천동설을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2014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26퍼센트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인 중에도 14퍼센트가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왜 답답한 사람들이 많은지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배움이 모자라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태양이 지구를 돌건 지구가 태양을 돌건 실제 생활에서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지동설을 믿는 사람이 천동설을 믿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게 산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진리를 찾고 진실을 밝히려는 이유는 일관된 삶의 방향과 근원적 의미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상과 거짓의 노예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진리와 진실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지는 각자의 의지와 판단에 달렸습니다. 객관적 시각 또는 과학적인 실험으로 입증된 지식을 진리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진리는 책에 담긴 내용물이 아닙니다. 기계적으로 대입하기만 하면 빤한 결과가 산출되는 수학 공식도 아닙니다. 진리는 무궁무진하게 변화하며 인간의 삶을 역동적으로 이끌어갑니다. 쉽게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깨달음과 실천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체감하고 체화합니다. 

진리는 위대한 성현들의 인격을 통해 세상에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역시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구현된 진리입니다. 예수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통해 완성되는 구원의 진리를 설파했습니다. 예수는 아버지 하느님을 우리 안에 머무는 진리의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대들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그대들과 함께 머물고 그대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거짓과 오류가 진리를 은폐하고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뜻 있는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진리를 지켜왔습니다. “예수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시려고 의로운 분으로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육으로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목숨을 바쳐 지킨 진리는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진리를 간직하고 사는 한 예수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그대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그대들에게로 돌아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은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의 육신(肉身)이 다시 살아 나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십자가상 죽음은 예수의 육신을 거두어 갔습니다. 역사적 인물 나자렛 사람 예수는 더 이상 지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법신(法身)을 봅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며 그분과 하나 된 불굴의 정신을 발견합니다. 죽음 앞에 맥없이 무너져버리는 육신이 인간 존재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 깨달은 진리는 단 한 가지.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시원인 하느님께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죽음 앞에 무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바람에 흩날리는 흙먼지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제 힘으로 제 맘대로 살려 하지만 결코 죽음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합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살 때 이 경계가 사라지고 영원이라는 더 깊은 차원의 삶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경계가 뒤바뀌는 부활 체험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못지 않은 극적인 체험일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완전히 하느님 중심으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시기의 막바지를 보내며 혹여 놓치고 사는지 모르는 부활의 의미를 다시 상기해봅시다. 부활을 내년에 다시 돌아올 전례시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부활은 평생 일어나지 않는 사건입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때요, 은총의 날입니다. 지금 이 순간 진리의 영이신 그분을 받아들여 삶의 방향을 바꾸고 부활을 체험하는 은총을 간구하며 미사를 계속하겠습니다.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