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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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가해, 2017.10.22) - 고 이사악 신부 17-10-24 10:09: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2   

매년 주교회의에서 교세 통계를 발표합니다. 교세 통계는 한국 교회가 얼마나 복음화 되었는지 수치로 간략하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 천주교회에 소속된 신자는 5,741,949명입니다. 인구 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은 10.9%인데 서울 대교구가 15.4%로 가장 높고, 마산 교구가 6.8%로 가장 낮습니다. 570만이면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악방 수도원의 로멩 아빠스께서 함께 하셨는데, 토고의 인구가 7백만 명입니다. 그러니 한국 교회는 작은 나라를 하나 세울 정도의 신자를 확보한 셈입니다.

200년 남짓한 교회 역사에 비해 높은 성과라고 평가할만한데, 실질적인 신자수를 추적해 보면 그렇게 자화자찬할 상황은 아닙니다. 2016년 전국 부활 판공성사 비율이 31.7%입니다. 일 년에 고해성사 한 번 볼 정도, 그야말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신자수는 182만 명으로 떨어집니다. 주일미사 참석률까지 따지면 실질적인 신자수는 이보다 훨씬 더 줄어듭니다.

강론 서두부터 교세 통계를 언급하는 이유는 아직도 복음화율이 미미하니 전교를 더 열심히 잘하자는 취지가 아닙니다. 복음화에도 일종의 전략이 필요하기 때문에 분석하고 고민해 보자는 의도입니다. 과거에는 한 지역이나 국가 전체가 가톨릭 신앙을 신봉하게 만드는 것을 선교의 주된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교회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미치는 영토를 확보하여 사람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일종의 종교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과거 선교사들은 영주나 군주 같은 권세가들에게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특정 지역의 영주나 가문의 수장이 세례를 받고 지역 주민 전체가 집단적으로 개종한 사례는 교회의 선교 역사 안에서 빈번히 발견됩니다.

일종의 전략적 접근인 셈입니다. 사회의 기층부를 파고드는 것보다 사회 지도층의 입교를 유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선교 전략이라는 생각은 과거나 현재나 많은 이들이 동의합니다. 16세기 동아시아에 진출한 예수회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명나라 말엽 마태오 리치 신부의 요청으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아담 샬 신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는 천문과 역법이 중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 분야에 해박한 아담 샬 신부를 중국에 불러들였습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의 예상대로 아담 샬 신부는 천체를 관측하고 달력을 제작하는 부서인 흠천감에 발탁되어 벼슬을 얻습니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후에도 아담 샬 신부는 더욱 등용되어 3품 광록대부의 지위에 오르고 흠천감의 책임자인 흠천감정을 제수 받습니다. 청나라 순치제는 유독 아담 샬 신부를 총애하여 황제의 생일잔치가 두 번이나 아담 샬 신부가 사는 집에서 열렸고 새해인사도 거기에서 받았다고 합니다.

사회 지도층을 영입하려는 선교 전략은 일본에서도 시도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천주교에 호의를 보이며 입교하는 지방 영주들이 생겼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조선을 침략한 고니시 유키나카가 대표적인 천주교 영주였습니다. 고니시 유키나카는 십자가를 문장으로 삼을 정도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아쉽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벌어진 권력 투쟁에서 고니시 유키나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밀려났고, 이후 에도 막부의 철저한 천주교 탄압으로 다른 천주교 영주들도 세력을 잃고 맙니다.

청나라 조정에서 활약했던 아담 샬 신부도 어이없는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아담 샬 신부가 황제에게 지어 올린 새 달력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새 달력은 향후 200년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반대파들의 시비거리가 되었습니다. 왜 고작 200년짜리 달력을 만들었느냐, 그럼 청나라의 국운이 200년 밖에 안 되느냐는 말도 안 되는 모함이었습니다. 이 일로 아담 샬 신부는 모반죄에 연루되었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했고 이후 청나라 황제들은 천주교에 호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도시 위주의 선교 활동으로 천주교는 민중 속으로 파고 들지 못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황제의 후광이나 영주의 후원으로 가톨릭 신앙이 쉽게 전파되리라는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선교의 대상이 원천적으로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복음의 기쁨을 전해 주는 것이 선교활동의 목적이고 복음화의 과제라면 그것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옳습니다. 앞서 살펴본 교세 통계를 분석해 보아도 답은 금세 나옵니다. 도시일수록 부유할수록 신자비율이 높고, 지방일수록 가난할수록 신자비율은 낮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복음의 기쁨이 가장 절실한 사람들은 힘이 없고 소외된 사람들이건만 오히려 교회는 거기에 없다는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대로 교회는 변방에 서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자리해야 합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 전체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펼쳐졌습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가난하게 되실 정도로 하느님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습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들의 삶에 미치는 구원의 힘을 깨닫고 그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초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발표한 회칙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 시대에 하느님의 자비가 시급히 필요한 존재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노숙자, 중독자, 난민, 토착민, 점점 소외받고 버림받는 노인, 불법 공장이나 매춘 조직에서 구걸에 이용되는 어린이들, 불법 노동 착취를 당하는 이들, 배척과 부당한 대우와 폭력의 상황에서 시달리는 여성, 자신을 방어할 힘이 전혀 없는 무죄한 태아, 경제적 이윤이나 무분별한 착취에 휘둘리는 자연 생태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 불쌍한 존재들을 가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투쟁까지 불사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교회가 복음화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최근 들어 교황께서 단순한 포교나 선교가 아닌 사회적 차원의 복음화를 강조하시며 거시적 안목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는 우리는 약간 불편하고 껄끄럽습니다. 내 식구들조차 성당에 못 데리고 와서 냉담 중인데,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복음화를 하라는 말인지 답답합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한 가지씩 하면 충분합니다. 비록 한 개인의 행동이 바닷물에 빗물 한 방울 떨구는 정도의 효과를 내겠지만 빗물 한 방울이 바닷물이 섞이기 전과 후는 아주 미세하겠지만 분명 차이는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니 계신 데가 없듯이 가난한 이들도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합니다.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분들에게 해외의 가난한 이웃 교회들을 돕는데 앞장서 주시라고 당부드립니다.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신생 교회들과 정치적 불안적과 경제적 궁핍에 허덕이는 제3세계 교회들을 우선 고려해야 합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거창하고 그럴듯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이 정성과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택시 한 번, 커피 한 잔 값 정도의 작은 희생들을 모아 주시면 복음의 기쁨을 세상 사람들과 나눌 밑천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마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축일입니다. 교황께서 발표한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중 한 대목을 읽어 드리고 강론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선교 사업에는 경제적 필요성도 큽니다. 그것은 최소한도의 구조(성당, 교리 학교, 신학교, 기타 건물)를 갖춘 교회를 설립하는 데뿐 아니고, 자선 사업, 교육 사업, 인간 향상 사업 등,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의 넓은 분야의 활동을 지탱하기 위해서입니다. 선교 지역 교회는 물질적으로 부요한 교회의 자녀들이 희사한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선교는 복음 선포와 동시에 가난한 이를 위한 애덕에 참여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생명과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잠시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빌려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그럽게 준다는 것은 항상 신앙의 빛과 신앙의 충동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받기보다 줌으로써 더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전교주일 행사에 동참하려고 우리 수도원을 찾아주신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아울러 오늘 하루 받기보다 줌으로써 얻는 행복을 체험하는 시간을 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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