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연중 제15주일 강론)

 미사 전

 인간이면 누구나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머리로가 아니라,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구체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사랑하기가 힘든 걸까요?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일까요?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를 한번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기에 앞서 우리 안에 있는 강도 맞아 쓰러진 내면의 상처들, 이웃을 외면하는 무관심들에 대해 되돌아보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강론

방금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율법교사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시며,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라는 질문에 감동스럽게 답한 한 의인의 삶을 소개하면서 강론을 시작할까 합니다.

얼마 전 저는 뜻밖의 기회로 3박 4일 동안 평양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베네딕도회의 선배님들이 활동하시던 땅이라는 것과 가기 힘든 미지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렘과 긴장이 저를 들뜨게 만들었고, 일정 내내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충격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충격들 이 외에 제 내면을 흔들어 놓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 저는 함께 가톨릭 대표로 갔던 주교회의 사무국장 최원오 신부님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으셨던 분으로부터 독립 운동가였던 할아버지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그 할아버지는 그리스도교인 이었으며, 평범한 우리의 관념을 깨고 진정으로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을 공경한 분이셨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을 찾자, 만주에 이주해 살던 일본인들은 중공군과 조선인들 피해 일본으로 달아났고 미처 피신을 하지 못한 일본인들은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참히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무기를 들지 않은 민간인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시며, 오히려 중공군 몰래 일본인들을 숨겨 주시고 재산을 팔아 일본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독립 운동가였기에 누구보다 일본인에 대한 증오가 컸지만, 그 순간에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재산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남은 재산을 다 팔아 일본인과 조선인의 이주를 도와주시고 정작 자신은 가족과 함께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 오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때때로 함께 사는 형제들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싸주질 못할 때가 있는데, 어떻게 나라를 빼앗고 온갖 착취와 살인과 박해를 일삼은 적국의 사람들 보호해 주고 무사히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도록 해 줄 수 있었을까? 자신의 감정과 합리적 이성을 넘어선 초월적 사랑이 없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정말 이분이야말로 오늘 복음이 말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특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 모두에게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신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처럼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하느님께서 자리하고 계시고,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주님께서는 똑같이 단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다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때가 참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의 시간, 나의 배려, 나의 관심을 바라는 가까이의 가족과 친구들, 형제들에게 조차 자신을 내어주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수도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니, 특히 이 부분에 참 민감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나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의 변화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은 확실히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남의 탓이 아니니까요!! 내가 아직 그 사람을 받아들일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니까요!!

 얼마 전에 어느 후배 수사님이 공동체의 한 형제를 참 받아들이기 힘들어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이 가득할 때에는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 “나”가 가득할 때에는 모든 것이 나 중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미움과 불평의 단계를 지나고 나면, 다시 나의 그릇은 더 커지고 이어 연민과 자비의 단계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초기의 막연한 열정과는 다른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측은한 마음에 참여하게 될 때.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처럼,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이를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듯 연민의 마음이 생겨날 때, 하늘의 마음을 닮아가고 그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나와 같이 생각하기를 바라다가는 날 샙니다.^^

 내가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갈 때, 억울함도, 불평도, 미움도, 증오도 승화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수도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하고, 여러분들도 매주 혹은 매일 미사 참례를 하고 기도를 하는 것도 결국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 하느님처럼 사랑하여 그분의 생명,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의 매순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마주 오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선물이구요.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이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동정과 연민, 자비와 나눔이 마음이 우리를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게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만히 눈을 감고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거나,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떠 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 다가가 보십시오.

만약 그 사람이 남편입니까? 그러면 오늘 남편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치유해 주고 용서해 주십시오. 일생을 그렇게 자신에게 얽매여 사는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만약 그 사람이 아버지 입니까? 아버지는 나름대로 아버지의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와 주름진 손을 잡아드리십시오.

 만약 그 사람이 나의 형제입니까? 그 형제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죄인임을 인식하고, 하늘마음으로 대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자기 자신입니까? 이제 그만 자신의 과거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이미 용서해 주신 그분이 사랑에 감사하며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십시오.

외면하며 지나가는 레위인들과 사제들이었던 시간들에 용서를 청하며, 죄로 쓰러져 상처투성인 우리를 날마다 치료해 주시고 쉴 곳을 마련해 주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도 그분을 닮아갑시다. 그분은 지금도 이 미사를 통해 우리의 아픈 곳을 치유해 주시고자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의 손길에 나를 내어 맡기며 그 분의 나귀에 타고 그분께서 인도해 주시는 곳으로 갑시다. 그분은 쓰러진 우리에게 이유를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으로 돌보아 주시며 손수 나귀에 태워 안식처로 인도해 주십니다.

사랑은 ‘받아들임’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고통마저 받아들임’입니다.

“주님! 저희가 원수마저도 받아들인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처럼은 아니더라도, 사람을 살리고자 스스로 목숨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만큼은 못되더라고, 적어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