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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05 23:18
시몬 아빠스님, 교부들의 순교 (2)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스
 글쓴이 : 김영진
조회 : 103   추천 : 0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스)

그 후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런 순교자들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06년 박해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순교자 모두 훌륭하지만, 그리스도교 순교역사에서 가장 교훈적이고 감동을 주는 순교자는 안티오키아의 주교 성 이냐시오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냐시오스는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세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제2대 주교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시리아에서 재판을 받은 다음, 로마의 콜로세움(원형극장)에서 맹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쿠오바디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해보면 당시의 맹수형이 무엇인지 연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냐시오스는 70년경 주교 되었고 107년 순교하셨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모두 순교한 다음 교회를 이끌어가던 핵심적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중동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이었고 사도행전 1126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처음으로 크리스티아노스 (그리스어 Cristianos, 영어 크리스찬 Christian), 그리스도인 이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다는 곳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세 차례 선교여행을 떠날 때 출발지 거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는 당시 전 교회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

따라서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는 소식은 당시 전 교회에 슬픔이었습니다. 시리아에서 재판을 받고 로마에서 처형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비행기로 두세 시간 걸리는 먼 거리인데, 하물며 당시 걸어서 또는 배 타고 가도 몇 달 걸리는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로마에서 처형하겠다고 하는 것은 로마제국 당국이 이냐시오스 주교를 얼마나 중요한 인물, 다시 말해서 위험한 괴수로 여겼는지 짐작케 합니다.

이냐시오스는 10명의 표범처럼 아주 포악하게 대하는 군인에게 끌려가서 로마로 압송되는 중에 잠시 묵게 되는 도시마다 그곳 신자들이 몰래 찾아와서 찾아뵙고 안타가워 했습니다. 이냐시오스 주교는 당신을 위로하러온 신자들들 달래면서 부디 믿음에 충실하고 이단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성 이냐시오스 일곱 편지)

그 분은 당신을 방문한 교우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일곱 개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중 여섯 개는 교회공동체, 즉 에페소(Ephesus), 막네시아(Magnesia), 트랄레스(Tralles),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스미르나(Smyrna), 로마(Roma)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고, 나머지 한 개는 스미르나 주교인 폴리카르포스(Polycarpus) 개인에게 보낸 것입니다. (2, 3)

이냐시오스 편지들은 평상시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형장으로 끌려가는 여정에서 쓴 것이기에 호소력이 크고 감동적입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맹수형이란 사자들이 달려들어 뜯어 먹는 것입니다. 선고받고 끌려가는 과정에서 쓴 것입니다. 이냐시오스 주교가 순교한 후 편지를 받은 교회들은 교회공동체 전례에서도 읽고, 돌려보면서도 읽고, 다른 교회에 빌려주고, 베껴 쓰고, 그 당시는 양피지에 써야 합니다. 편지가 너무나 아름답고 귀해서 편지를 돌려가면서 베끼게 되고, 그래서 퍼져나갑니다.

일곱 개의 편지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바치는 성무일도 독서기도 편에서 교부독서에 자주 나오는 좋은 묵상거리입니다. 이 귀중한 편지들이 다행히 우리말로 교부문헌 총서 제13권에 번역되어 있습니다. 정말 고전으로 모든 신자들이 읽어볼 필독 독서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4)

 

(순교, 그리스도에 대한 불타는 사랑)

이냐시오스 일곱 편지에는 그가 순교에 대해 얼마나 큰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맹수형을 받고 로마로 끌려가면서도 얼마나 큰 기쁨에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읽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이냐시오스 주교가 가진 순교에 대한 열망은 여러 서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순교를 그리스도께 대한 불타는 사랑”, “그 분과의 완전한 일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본문 몇 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제가 왜 제 자신을 바치려 하는 것 입니까? 제가 맹수를 가까이 하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 저는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는데,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 분께서 저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완전한 자가 못됩니다. 참으로 이제야 겨우 그분의 제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고 역설합니다.

이냐시오스 주교의 순교에 대한 열망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더욱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 합니다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수무리도 좋으며, 뼈를 비틀고 사지를 찢어도 좋고, 팔다리를 자르고 온몸을 난도질해도 좋습니다. 악한 자들의 어떤 잔인한 형벌도 좋습니다. 다만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 갈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목표도 세상의 모든 왕국도 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끝까지 가시는 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저에게는 더 낫습니다. 제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분이며,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신 그분입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이 저에게 다가 왔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순교, 천상탄생)

여기서 순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산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얻듯이, 이냐시오스 주교는 순교의 수난을 통해서 하느님 안에 새로 태어난다는 부활의 기쁨을 얻게 된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에 순교의 날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냐시오스의 이러한 믿음에 따라 교회는 순교자들이 순교한 날을 천상탄일이라고 부르고 순교일을 그들의 축일로 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교, 그리스도 사랑에 대한 보답)

순교에 대한 이러한 열망과 기쁨은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 818절에서 39장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여러분들도 순교성인날 자주 듣지만 감동적인 이 구절을 다시 들어봅시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로마 8, 18-19)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갖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택한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혹은 위험이나 칼 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해 죽어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 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기고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낮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높을 수는 없습니다.” (공동번역 로마 8, 29-39)” 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냐시오스 주교는 자기에게 직접 복음을 가르쳐 주셨고, 자기를 주교로 세워준 스승 사도 바오로의 이 말씀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살았을 것이고, 이 때문에 앞에서 나온 그런 고백이 나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순교, 그리스도와 일치)

이냐시오스 주교가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는 소식을 들은 로마교회는 훌륭한 지도자를 구해내기 위하여 구명운동을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이냐시오스 주교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이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기를 위해 어떠한 호의도 베풀지 말라고 이렇게 간청합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제가 그리스도께 가는 길을 시기해서 방해하지 말 것입니다. 제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이러한 좋은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침묵을 지켜준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저의 육신만을 사랑하게 되면 저는 단지 소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로 바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저를 위하여 하지 마십시오. 제단이 이제 준비되었습니다.”

또 이냐시오스 주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시라고 빨리 순교하고 싶은 열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 때문에 마련된 맹수 떼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맹수들이 나에게 성급하게 달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맹수들이 겁을 집어먹고 달려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는 달리 맹수들이 저를 재빨리 삼켜버리도록 유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맹수들이 만일 원치 않으면 저는 강요하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인간적인 것에 따라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만 한다면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라고 간청합니다. 이런 표현들은 서간 곳곳에서 나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편지들은 평상시 순교에 대한 열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형장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썼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그는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순교하고 싶어서 마치 안달하는 모습입니다. 생각 만해도 끔직스러운 맹수형을 받으러 가면서, 어떻게 그런 열정, 갈망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그분과 하나 되겠다는 사랑이 순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채워졌던 것입니다.

 

(1) 안티오키아(Antiochia) : 터키 남부 하타치 주에 있는 안타키야 (Antakya)’의 고대시대 이름이다. 안티오키아 (라틴어 Antiochia, 영어 안디옥 Antioch) 은 로마제국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이었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심이었다. (wikipedia 백과사전 https://en.wikipedia.org/wiki/Antioch)

 

(2) 스미르나(Smyrna) : 오늘날 터키 이즈미르(Izmir)’ 이다. 이스탄불, 앙카라 에 이어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이즈미르는 스미르나가 터키 발음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3) 에페소(Ephesus), 막네시아(Magnesia), 트랄레스(Tralles),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스미르나(Smyrna), 안티오키아(Antioch) : 고대 지도 참조 (현재 모두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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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부문헌총서 13, 이냐시오스, 일곱편지, 박미경 역주, 분도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