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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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6 00:05
시몬 아빠스님, 사랑 섬김 나눔의 기쁨 (5)이웃사랑
 글쓴이 : 김영진
조회 : 2,414   추천 : 0  

(서로 사랑합시다)

이제 우리와 더불어 사는 이웃과 관계에 대하여 함께 묵상해 봅시다. 그리스도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자비(慈悲), 유교에서는 인() 또는 효()를 가르치는 데, 얼핏 보면 사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가르치는 사랑의 의미와 차원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 요한의 첫째 서간을 좋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데 4장에서 나오는 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실상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하지 않은 자는 하느님을 모릅니다(1요한 4, 7-8). 누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형제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1요한 4, 20-21)”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고 구체적인 가르침입니다.

 

(사랑, 산상설교)

그런데 우리는 산상수훈(山上垂訓)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상당히 당혹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시오. 누가 오른 빰을 때리거든 다른 쪽 빰을 돌려대시오, 누가 당신을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져가려거든 겉옷마저 내주시오. 누가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이천걸음을 가주시오. 청하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달라는 사람을 물리치지 마시오 (마태 5, 38-41).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마태 5, 44).”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잘못도 없는 데 따귀를 때려요. 그러면 이 쪽도 때려주시오하고 돌려대요. 본정신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없지요. 이렇게 하면 집 다 말아먹지요.

 

(이웃사랑, 곧 하느님에 대한 사랑)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그냥 한번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것은 성인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은 불가능한 일처럼 비추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 2537-46절에 나오는 최후심판 대목에서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심판관이신 주님은 구원받은 오른편 사람들이게 너희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고,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갇힌 이를 살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하고 말씀하시고, 저주받은 왼편 사람들에게는 너희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바로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하느님께 대한 수직적인 사랑우리 이웃과의 수평적 사랑이 별개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의 사랑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

 

(적용 예)

이 원칙을 토대로 해서 앞에서 말한 산상수훈의 가르침에 적용시켜봅시다. 만일 추기경님이 여러분 집을 방문하여 오늘 저녁 식사하시겠다고 연락을 받았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아마 큰 영광이라고 여기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고, 극진히 대접할 것입니다.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시면서 한국 신자 가정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여러분 중 한 가정이 특별히 선택되었다고 합시다. 한 달 전부터 집안 청소하고, 새로 도배하고 만반의 준비를 할 것입니다. 교황님이 이런 저런 이야기 하시다가, 옷걸이 걸린 코트를 들고 기념으로 이것을 나에게 주겠는가?” 하시면 예 드리고 말고요그리고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속옷이 있는데 필요하시면 그것도 가져가십시오하지 않겠습니까? 꿈인지 생이지 모를 정도로 너무 기뻐하면서 드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추기경이나 교황님 보다 훨씬 더 높으신 분이고, 그런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웃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 세 가지)

예수님은 이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난하시기 전날 저녁, 유언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거행하시기 앞서, 앞치마를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의 발을 씻기려 하십니다. 제자들은 기겁을 하면서 극구 말립니다. 왜냐하면 남의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노예가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이요 스승인 내가 그대들의 발을 씻었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행한 대로 그대들도 행하도록 본을 보여주었습니다(요한 13, 14-15)” 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속전으로 목숨을 내주기 위해 왔습니다(마태 20, 2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34절에서 배반자 유다가 나간 다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그대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대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그대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대들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파스카 와 나의 파스카 일치)

사순시기 강좌는 기도와 절제의 삶은 우리의 눈에 끼었던 때를 벗겨내고, 그분을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수도규칙서에서 사순시기에는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파스카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하시는 말씀을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적 갈망은 주님의 사랑, 사랑의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의 파스카나의 파스카로 되어, 하나가 되는 갈망입니다. 그런 갈망은 '사랑과 섬김과 나눔의 기쁨' 을 통해서 사순시기 동안에도 이미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침 기도)

기도로서 오늘 강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따듯이 돌보아 주시나이까? 제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소서. 제가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당신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맛보게 하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참고) 동영상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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