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시작하며...

“평화를 찾아서 뒤따라가라”

(성 베네딕도 규칙서 머리말 17절)

베네딕도 수도원을 찾아오는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첫 느낌을 ‘평화스럽다’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바쁘고 분주한 세상의 삶의 모습과는 달리, 고요와 여유, 기도와 명상이 있는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고 말합니다. 하기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대인들이 복잡한 삶의 전선에서 벗어나 잠시 수도원을 찾았을 때 당연히 외적인 면에서도 사뭇 다른 평온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수도원에 며칠 머물며 느낀 평화로움이 오히려 어떤 이에게는 처음엔 경이롭다가 나중엔 내면의 시끄러운 소리에 짓눌려 벗어나고 싶은 것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복잡한 삶의 현장으로 서둘러 도망치듯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요히 머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단한 기도와 단순한 노동, 명상과 인내의 수행을 거쳐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얻어진 평화는 그렇게 십자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의 참된 평화는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인내의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도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였다는 것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느님을 자주 만나고 그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시련과 고통, 좌절과 아픔이 오더라도 쉽게 평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어려움 앞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려 마음의 병을 앓거나,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Pax Benedictina”(베네딕도의 평화)를 이번 수도생활 체험학교의 주제로 정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그 체험을 통해 마음의 참된 평화를 얻는 법을 배워나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하느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맛보기 위해 어떤 것을 버리고, 또 어떤 것을 채워야 하는지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젊은 시절부터 부단히 우리 영혼을 살찌우며 정진(精進)의 삶을 살아갈 때 인생의 위기가 와도 하느님의 힘으로 그 문제들을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28차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석한 여러분들은 앞으로 2박 3일 동안 수도자들과 똑같이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갖고, 미사도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도원 농장과 출판사, 목공소, 양로원 등에서 노동 체험을 하며, 수도승들의 살아있는 진솔한 이야기와 수도생활에 대한 강의도 듣게 됩니다. 이곳에 머무는 잠시 동안이나마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십시오.

주님께 모든 것 맡겨 드리고 “나는 베네딕도회의 수도자가 되었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과표에 진지하게 임해 주십시오. 특별히 “함께 하는 형제 자매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나눌 수 있도록 서로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우리 [베네딕도의 벗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령께 열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하고도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보다 삶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평화는 십자가를 통해 얻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수도원에서의 2박 3일이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힘겨운 생활을 체험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마음의 평화를 맛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8월

제28차 수도생활 체험학교에서

박 안셀모 수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