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종과 순종 <마르코1, 21-28.>

오늘 복음은 마귀들이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순종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복종은 힘이나 강제적 의미가 있으나 순종은 힘이 아니라 자기의식으로 온전한 자유로운 선택입니다. 주님은 능력을 발휘하여 마귀의 세력을 제압하여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시니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이는 복종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찬사의 말을 듣고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하시며 주님의 뜻을 따르심은 순종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수도원 인사이동의 날입니다. 인사의 결과를 복종시키는 일과 순종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인사입니다.

순종은 충분한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열린 마음으로 주고받고 하면서 이루어진 결과를 승복하는 것입니다. “인사가 만사다.” 라는 말은 사람을 자기 능력에 따라 배치하고 관리하는 것이 공동체의 성장과 일치를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순종이 우선이며 이런 순종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근본적 삶입니다. 믿음이란 순종의 삶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하느님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그는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순종을 잘하려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한 사람에게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것은 일이 지난 다음에 알고 어떤 것은 이미 알려준 일을 통해 아는 것이 있습니다. 주로 기도 중에 얻으니,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뜻을 찾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을 선택할 때나 십자가에 순종할 때나 산에서 기도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주님은 제게 지금껏 여기저기 이런 일 저런 일을 분주하게 하였으니 이제 조용히 <주님>을 찾으며 지난 일을 눈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시자 하십니다. 오늘 성체조배 시간에 감실 앞의 등을 보다 모양이 블랙홀처럼 생긴 전구를 보고 '나를 저 감실 안으로 초대하는구나 오늘은 저 안에 나도 주님과 함께 들어가 블랙홀에 사라져 가듯 주님 안에 흡수되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구나.' 생각하면서 주님 안에 내 모습을 사라져 가게 하는 것이 오늘의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영원한 존재 안에 나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나의 존재는 세상에 없어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을 순종의 삶으로 메꾸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는 믿는 모든 사람이 복종의 삶이 아니라 순종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고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