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해야 했기에 피조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시도해 본 방법은 그것을 화두 삼아 가슴에 품고 하루 하루를 살아 보았습니다. 마치 암자에서 고행하는 스님들 마냥 ‘피조물의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를 풀기 위하여 생업의 현장에서 가슴에 품고 살아 보았습니다. 성무일도의 초대송에 있듯이 세상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을 사랑하여 당신의 피조물까지 사랑하게 되는 방법을 사용해 보았습니다. 피조물을 사랑하게 되면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다음에 사랑하게 되지만 우리 가톨릭 신앙 안에서는 주님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미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전에 사랑할 수도 있기에 주님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피조물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해 보았습니다. 의도와는 달리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패하였습니다.

두 번째 방법. 10월7일 서울 시청을 출발하여 청계천과 용비교 잠수교를 지나 여의도, 마포대교에 이르는 마라톤을 하면서 숙제를 풀려고 해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신부님도 함께한 대회였기에 남다른 달리기였습니다만 숙제를 풀지는 못했습니다.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가 없었고 그 동안의 철저한 훈련부족으로 인하여 잘 뛰지도 못하고 힘들어만 했던 것 같습니다. 좌절이 밀려 오더군요. 새와 대화하고 늑대를 감화시키신 프란치스코성인의 모습이 또다시 건국신화속 등장인물이 되는 것을 느끼면서 주님께 도와 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나무와 돌을 보고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 또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세 번째 방법은 안양대첩입니다. 안양대첩은 저와 아내 로사, 8살 된 상민프란치스코가 안양천에서 벌이는 달리기 시합을 말하는 저희 식구들만 아는 단어입니다. 저는 10키로를 뛰고 로사와 프란치스코는 5키로를 뛰면서 저녁 내기를 합니다. 지는 사람이 밥을 사기 때문에 분위기 팽팽합니다. 쌍심지를 키고 달린다니까요 …..  그 동안 안양대첩을 못하고 있다가 상민프란치스코의 배가 나온 모습을 보고 제가 가족들을 끌고 안양천 신정교 밑으로 갔습니다. 아들의 나온 배가 귀엽다는 생각보다는 아동 비만이 걱정되어 그 동안 소홀했던 안양대첩을 하기로 하고 드디어 10월 14일 13:00 신정교에서 세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게 되었습니다. 결전의 긴장과 함께 이기고 말겠다는 승부욕이 프란치스코성인께서 말씀하신 가난과 겸손의 덕목을 흔들고 있습니다. ^ㅎ^

신정교출발 2.5키로 지점에서 로사와 프란치스코가 걱정되어 멈추어 섰습니다. 10월 7일 하이서울 마라톤에서 입은 부상으로 제 몸 상태도 10키로를 뛰기에는 벅찬 상황이기도 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로사가 보이고 또 한참 후에 프란치스코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걸어왔다고 하네요. 프란치스코의 달리기 부족 현상입니다. 운동은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로사를 먼저 보내고 전 프란치스코와 같이 5키로를 달리기로 했습니다. 애가 너무 힘들어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건지 아님 운동부족으로 그러는지 종잡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넌 강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면서 5키로 달리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안양천 주로에 만개한 억새풀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워낙 억새풀이 많으니까 안 보려고 해도 시선이 억새풀에 꽂힙니다. 바로 이때 머릿속에 이어령시인의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는 시가 떠오르면서 어렴풋하게 피조물의 아름다움의 실체가 보이는 듯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무지 무지 노력하는 제 모습이 저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벌써 며칠째야 ?’ 그래도 어렴풋하게 피조물의 아름다움이 보이면서 기쁨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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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 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引力)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運行)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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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이 너 임마 빨리 안 뛸 거야 !  평소에 달리기 연습을 해야지 임마.  11월에 마라톤 대회 5키로 신청해 놀 테니까 꾸준히 연습해.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광명 구름산 등산과 안양대첩 중 하나를 고르게 하려고 했는데 너 뛰는 것 보니까 이제 당분간은 일요일 오후에 안양대첩만 한다. 빨리 뛰어 ! 너 저번 동물원 갔을 때 곰에게 아빠 안녕하고 인사했다면서? 이놈이 그냥 .....  빨리 뛰어 !”

신정교 1.5키로 전방까지 그러니까 목동교와 오목교 사이 영학정을 통과할 때쯤, 그래 바로 이러한 자연의 희생과 조화, 존재 이유들이 내가 찾고자 하는 아름다움일거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과제를 했다는 안도감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달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피조물과의 조화를 위하여 자기 희생을 하는 모습들. 꽃은 꽃대로 아름다운 자태를 자연에 보태고 억새풀과 눈에 띄지 않는 많은 생물체와 미생물체는 또 그 자신의 존재를 보태 자연을 완성하는 모습들이 가난과 겸손의 덕목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꽃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성적인 저로서는 한 피조물의 단독 아름다움보다는 그 모든 피조물들이 서로 희생과 조화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만들고 또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는 시에서도 그러한 조화와 희생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어울려 자연을 이루어 사는 것이 피조물의 아름다움이며 각각의 피조물들을 살아가게 하시는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림이 마땅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럿이 함께하면서 큰 아름다움을 만들기에 그 하나하나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관점이고 맞는 말씀인 것도 같습니다. 사람이라는 피조물을 본다면 함께 살기 위하여 사회 질서와 공동윤리를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자기 계발을 통하여 사회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됨으로써 자기 희생과 조화를 통하여 자기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꽃이나 나무, 돌 그리고 바람 등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옳은 것처럼 보입니다. 과제를 다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피조물들이 서로 함께 하는 모습이 아름다움일 수 있고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지만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기 전, 피조물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신정교를 500미터 정도 남겨두고 천천히 달려 가고 있었습니다. 과제를 했다는 기쁨에 아주 천천히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30마리에서 50마리 정도의 새들이 동시에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로에 서 있던 나무에 새들이 많이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었던 것입니다. 뛰다 말고 그 나무 밑에 한참을 앉아서 그 새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물이 핑 ……..  뒤따라 들어 오던 로사를 불러 세웠습니다. 이 소리를 들어 보라고 …… 그 아름다운 새 소리를 더 음미하고 싶어 조금 더 가까이 나무에 다가갈 때마다 새들이 소리를 멈추고 잠시 멈칫하였지만 다시 그 아름다운 소리를 합창합니다. 또 눈물이 핑 ……. 모든 피조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희생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30마리에서 50마리 정도의 새들이 합창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각 피조물은 혼자 있을 때도 아름답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과제를 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요한후코에게 주님께서 가르침을 주고 계심이 분명했습니다. 새들의 합창.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도 피조물이기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며 나아가 그 아름다움을 더욱더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가 다시 가져가면 하느님에게 혼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개발하고 향상시켜야 합니다. 피조물 하나 하나는 모두 아름다움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피조물을 만드시고 먹여 살리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귀중한 체험과 시간을 보낸 안양대첩이었습니다. 나무와 꽃, 새, 바람과 눈 등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움을 뱔견하게 되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충만하게 만들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사람이 아닌 바람에서, 사람이 아닌 나무에서, 사람이 아닌 꽃에서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