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신 분은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러 계셨다. <루카 18, 9-14> 3월 18일

모든 건물을 튼튼하게 지으려면 기초부터 깊게 땅을 파고 기초가 만들어져야 높은 건물을 지어도 지진이나 비바람에 견뎌서 우뚝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치도 낮은 자리가 튼튼해야 모든 것이 오래 지탱하고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금수저 집에 편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생을 모르고 살아서 올바른 성장의 원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남이 알아주길 바라고 자만심으로 가득 차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지나가 버리거나 무관심으로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합니다. “모자란 자식이 효도한다.”라는 말을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어려서 고생한 것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사제가 되어서도 본당 보좌로 아무 힘도 권리도 없이 3년을 살다 보니 겸손한 사제로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알고 돌보아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당신부 되면서 가난한 농촌 사정을 감지하고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을 모아 야간학교를 세워 밤에 공부하게 하고, 본당 큰 마당에 농사짓고, 양계장 짓고, 돼지우리 짓고, 나중에는 부화장도 지었습니다. 온통 농장처럼 시작하며 대한민국 각 곳을 필요한 곳에 의식 개발을 위해 농촌 청년들 만나서 강의하러 다니며 30대 때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서민 금고인 신협을 일반화하려고 서울의 교육기관에서 직접 시골에 와서 신협 교육을 하고 각 농촌에 신협을 만들었습니다. 제일 오래된 신협은 구미 신협입니다.

낮은 자리에서 경험하여 이렇게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돌보는 일이 생깁니다. 저는 상담을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체험을 통해 성령의 말씀을 따릅니다. 글도 다른 이의 글을 보고 쓰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 속에서 지금 오늘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알아차리고 묵상 글을 써왔습니다. 어느 때는 약간의 기억을 하지만 나도 잊어버리고 글을 다시 봐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은 십자가 밑에 깔려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신 주님은 가장 높이 십자가를 산 위에 세우고 성당 안이나 밖에, 어디나 높이 세워져 구원받으려는 사람의 표징이 됩니다. 저는 청년 시절 몸 고상이 아니라, 벽에 거는 십자가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서 주님과 함께 살아보았습니다. 지금은 제 몸에 성호를 놓는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그 손으로 봉사, 나눔, 친교를 실천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늘 제 앞에 가고 있으며 십자가의 증표가 저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고 있습니다. 죽음의 고통 끝에 부활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서 그 많은 고통은 새로운 희망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각기 낮은 자세에서 우리를 살리려고 주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