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분원 방문의 감동을 안고

                                                                                                                김 에제키엘 수련자

5월의 시작부터, 사람들은 꽃가루와 때 아닌 무더위로 지치기 쉬웠다.

전날 밤에 고마운 단비가 시원스럽게 내렸다.

다음날 부산 분원을 방문한다는 일정 때문인지, 오전에 비가 온다면 좀 불편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있었다. 당일 아침, 날씨는 활짝 개였다.

오히려 전날 비가 꽃가루와 더위를 말끔히 씻어간 덕분에, 우리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런 기분과 어우러져, 부산 분원의 첫 방문이 알찬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도 커졌다.

차창으로 스쳐가는 풍경에는 어김없이 초록빛 물감이 산 위에 흩뿌려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도로를 닦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기 위해 산을 휑하게 깎아낸 모습에 마음이 착잡했다. 왜냐하면 화재로 앙상하게 남아 있던 수도원 건물을 허물고 황량한 흙더미를 드러낸 자리를 제의방(예전 스타시오 복도) 창문으로 보고 있노라면 가졌던 생각과 묘하게 교차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부산에 도착했다.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과 아파트들의 도시가 나의 시선에 들어왔다. 부산 분원에 관해 예전에 듣던 바로는 도시 속에 있음에도 피정의 장소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런 도시의 요란함과 거리를 둔 곳이 있을까?’ 부산이라는 도시와 인연이 거의 없던 터라, 여느 대도시처럼 바쁜 삶의 숨소리를 내쉬는 곳으로만 생각했다. 처음에 가졌던 설렘과 기대는 점차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분원에 도착. 잠시 동안 복잡한 도로를 벗어난 후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다.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분원은 자리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놀란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들었던 그대로이다!

송 바르나바 수사님의 안내로 분원의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숨겨져 있던 풍경들이 오솔길 사이로 우리를 반겼다. 특히, 직접 발을 떼면서 십자가의 길을 할 수 있도록 오솔길의 모퉁이마다 14처의 부조상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피정을 온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메는 큼지막한 나무 십자가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색적이었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뒷산의 정상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생각지도 않은 그림이 내 눈에 펼쳐졌다. 절벽 끝에서는 산들로 둘러싸인 저수지가 내려다보였다. 옆으로는 병풍처럼 절벽들이 저수지 위에 우뚝 서있었다. 그리고 수사님이 안내한 성모동굴에는 전설어린 성모상이 놓여 있었고, 가부좌를 틀면 바로 묵상이 될 바위 위에도 앉아봤다. 산들바람이 땀방울 어린 얼굴을 스치면서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나 홀로 자연과 대면하면서 잠시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정말이지 하느님이 경이롭게 창조하신 자연 앞에서는 누구나 경건하고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에서 느낀 감동을 품고 내려오면서 김 가롤로 수사님이 가꾸시는 밭을 둘러봤다. 갖가지 야채가 심겨진 이 큰 밭을 혼자서 관리하신다는 설명에 절로 감탄이 쏟아졌다. 조그만 일에도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했다. 오랜 수도 생활의 경륜이란 무엇인가를 부산에 내려와서까지도 거듭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분원의 신부님, 수사님들과 함께 낮기도를 바치고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성당에서 조용히 묵상을 하시던 노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인상적이었다. 편람과 일 년에 몇 번 있는 형제들의 모임으로 얼굴을 익힐 수 있던 정도여서, 우리는 수사님들이 어렵다고 지레 생각했지만, 수련자가 왔다고 따뜻하게 맞아 주시던 수사님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좋았고 감사했다. 바쁜 도시의 리듬 가운데서도, 자연의 넉넉함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사시는 수사님들이 언제나 건강하고 기쁘게 수도 생활을 하시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