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제26차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마치고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수도생활 체험학교 후기 공모를 하였습니다. 여러 명이 베네딕도의 벗들 카페에 글을 올려 주셨고, 그 가운데 좋은 글을 선정하였습니다. 여기에 선정된 글을 올려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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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글

글 : 김수지 아녜스 벗님

수체 후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요.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겠죠?

글을 적다보면 생각이 정리가 되고 자신의 마음을 객관화 시킬 수 있게 된다는 안셀모 신부님의 말씀..!에 완전 공감하며 몇 글자 적어보면서 수체 후 열에 들뜬 듯한 이 기분의 실체를 밝혀보려고 합니다 ㅎㅎ

이렇게 뒤돌아 보는 글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써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자잘한 사실관계는 모두 자연스럽게 잊혀지고(헉-_-;;) 고운 체 위에 커다란 알짜배기만 남은 느낌이랄까요? ㅎㅎ 사실.. 그저 막연히 '좋았다..'라고만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기억하고 싶은 일들, 느낌들이 너무 많았기에 더 많이 잊혀지기 전에 이렇게 글로 남겨두고 싶었답니다 ㅎㅎ

좀 많이 길긴 하지만;; 스~윽 읽어보면서 각자의 2박3일을 함께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1. 왜관에 가기까지

수도생활 체험학교. 왜관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먼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시기상으로도 개강준비에 바쁠 때라서 처음엔 그냥 넘겼다. 아.. 게다가 이번 수도생활체험학교의 주제가 나로서는 그다지 자신 없는 ‘공동생활’이라서 가서 괜히 피곤하기만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주저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

그러다가 안셀모 신부님께 전화 문의를 드리게 됐고 난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나 혼자서 완전히 설득당했다! 지금은.. 그렇게 망설이던 나를 확! 잡아끌어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린다.ㅎㅎ 그 이후 카페에 드나들며 자료집도 보고 성가도 듣고 9일 기도도 하면서 8월 15일을 기다렸다.

2. 첫째날

서울에서 왜관까지 3시간 40분! 무궁화호가 전하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왜관역에 도착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북적이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도무지 수도원이라고는 나올 것 같지 않게 생긴(!) 길을 불안해하며 혼자 걸었다. 수도원 발견!!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기대감으로 가슴은 콩닥콩닥.

접수를 하고 피정의 집에 짐을 풀고 구성당에 모여 입회식으로 2박3일을 시작했다.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저는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은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짧지만 가사도 선율도 참 인상 깊었다. 양팔을 벌리고, 두 손을 교차해서 가슴에 대고, 깊이 절하는 간단한 동작에도 주님께 나를 완전히 열어 보이고 낮은 자세로 나를 봉헌한다는 엄청난(!) 서약이 깃들어 있다는 걸 느꼈다. 새로운 이름으로는 ‘여유’를 골랐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되 마음만은 여유롭게. 나만 알고 끝없이 앞으로, 위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친구도, 이웃도 살필 줄 아는 여유. 내 생활 안에 주님의 자리를 넉넉하게 마련해 드리는 여유.

이어지는 인 끌레멘스 원장 신부님의 강의. 당신께서는 굉장히 까칠하심을 여러 번 강조(!)하셨지만 강의는 시종일관 웃음 속에서 진행됐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큰 원리이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순명이다, 참다운 믿음이 있는 사람은 형제의 말을 하느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시면서 수도원 내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주셨다. 우리와 똑같은 수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수도원이, 수사님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외적으로 비춰지는 평화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고쳐나가는 노력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 저기 흩어져있던 조원들이 한 곳에 모였다. 우리 4조는 안내실에 둘러앉아 간단한 자기소개도 하고 이냐시오 수사님께 수도생활에 관한 질문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첫 만남은 조금은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우리의 공통점! 저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스스로 수도생활체험학교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도 모두들 참 예뻤다. 아.. 모두들 제 나이로 보이는 사람이 도무지 없어서 내내 혼란스러웠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ㅎㅎ

저녁명상과 저녁기도를 위해 수도원 성당으로 향했다. 크지는 않지만 아늑한 느낌이었다. 수사님들의 자리가 꽉 찼다. 이렇게 많은 수사님들을 보는 건 처음이다 +.+ 침묵 그리고 기도. 비록 노래는 잘 몰라 립싱크로 넘기고, 앞뒤로 책 뒤적이랴 수사님들 보고 앉았다 일어섰다 따라하랴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그 고요한 분위기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었다. 공동체 기도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기도가 끝나고 백발의 노수사님 에서부터 내 또래로 보이는 수사님까지 줄지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원장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공동체와 순명을 떠올렸다.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보다 늦은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다시 끝기도.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에 순간 흠칫했다;; 새삼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보통 이 시간이면 성찰을 하긴 한다. ‘오늘 하루는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고.. 왜 이것 밖에 못 한 거지?! 얼른 해치워야지’ 하면서 분주한 저녁을 보내고 늦은 시간에 지쳐서 잠들기 일쑤다. 하지만 오늘만은 평소보다 이른 하루의 끝을 맞이하면서도 더 많은 생각거리를 가지고 여유롭게 하루를 돌아볼 수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은 고해성사. 면담식 고해성사는 왠지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가장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 중 하나였다. 고해소에서의 신부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잠이 들었다.

3. 둘째날.

평소 같으면 잠든 지 몇 시간 되지 않을 시간에 일어났다. 여름인데도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수도원을 감싼 고요와 어둠. 룸메이트 민주 로사와 꼭 붙어서 성당으로 향했다. 하얀 수도복을 입으신 수사님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 둘 소리 없이 등장하시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가슴을 쓸어 내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간에 기도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하니 상쾌하기도 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지 않은 비가 오는 가운데 수도원 견학이 진행되었다. 출판사, 유리공예실, 금속공예실, 역사 박물관 등을 돌아봤다. 모든 게 마냥 신기했다. 장인정신이라고 부를 만한, 수사님들의 소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인상적이었다.

어제 원장 신부님의 강의에 이어서 오늘은 아빠스님의 강의가 있었다. 베네딕도 성인의 규칙서를 중심으로 함께 사는 법을 강의해 주셨다. 그 비결은 역시나 순명. 서로 내어주고 서로 다투어 섬기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도 마주해야 한다며 영화 크로싱의 “예수는 남조선에만 있습니까?”의 대사를 인용하실 때의 아빠스님의 눈빛과 표정. 그 순간 모두 잠시 숙연해 졌다.

자리를 옮겨서 ‘ 함께 사는 것이 힘들 때 나는 이렇게 했다.’는 주제로 조별 나눔 시간을 가졌다. 조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도 많이 했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나만 함께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에 여기저기서 다양한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어제부터 모두의 관심사였던 노동체험이 있었다. 산으로 고사리 캐러 간다는 이냐시오 수사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던 우리는 수도원에 남아 초를 만든다는 사실에 다소 실망(?) 했다. ㅎㅎ 초를 파고, 왁스를 녹여 모양을 찍어내고 색을 칠하는 과정 모두가 즐거웠다. 객관적으로 뛰어난 작품성 또는 상품성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했던 시간이었다. 왁자지껄하게 간식을 나누며 저녁에 할 연극 시나리오도 짰는데 처음엔 막막했지만 15명이 머리를 맞대니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와서 제지가 필요할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저녁기도, 저녁식사도 끝나고 모두 성당에 모였다. 각 조의 개성 있는 연극을 보며 많이 웃었고 다 같이 음식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한 사람씩 안아주면서 나누었던 평화의 인사도 기억에 남는다. 눈을 감으니 그대로 기도가 되는 시간이었다. 왠지 마음이 넉넉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내일이면 떠나야 함을 아쉬워하며 잠이 들었다.

4. 셋째날.

몇 시간이나 잤을까? 둘째날보다 힘들게 일어나서 성당으로 향했다. 늘 전쟁 같은 아침을 보내는지라 피곤한 와중에서도 고요한 아침 기도와 명상은 오늘도 소중하고 상쾌했다. 아침 식사 후에는 방 정리도 하고 수도원을 누비며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미사에 앞서 늘 선창을 하시던 수사님께 그레고리오 성가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는데 “아직 다 안 왔어요.”하시던 수사님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오선지에 익숙해진 탓에 악보 보는 것도 힘든데 라틴어 가사까지 따라하려니 노래하는 데 머리가 다 어질어질 했다;; 그래도 모두 다 같이 실수해도 웃고 넘어가며 불렀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 아름다운 선율만큼이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주일미사가 끝나고 기념촬영까지 마치니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구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조별모임을 가졌다. 연락처를 교환하며 소감을 나눴는데 다들 많은 것을 얻어 간다. 모두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환호와 박수 속에서 서원장과 나의 다짐을 적은 종이를 돌려받고 안셀모 신부님의 말씀을 끝으로 2박 3일을 끝마쳤다. 공동생활 가장 큰 걸림돌인 이기심을 버리고 일상의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 나의 시간과 공간 안에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씀. 밖으로 나가 내공을 쌓아야겠다!하지만 영빨의 유효기간은 일주일 이라나?!

조원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수도원을 떠나야 함을 아쉬워하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같은 기차에 탄 참가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울에 도착했다. 집으로 들어서는데 무엇인가에 취한 듯 기분이 좋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에는 힘이 넘쳤다.

5. 그 이후..

수사님들께서는 일생 동안 정진하시는 길인데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 것을 얻어오려고 욕심내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수도원을 찾았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왔다. 모두 마음을 열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대방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고 배려해주는 조원들의 마음, 솔직함이 묻어나는 말과 행동, ‘기도하고 일하라’를 실천하시는 수사님들의 생활을 보고 체험하면서 꼭꼭 걸어 잠가 두었던 마음을 열어나갈 수 있었다. 그랬더니 매 순간이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잊지 못할 순명. 형제에게 순명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순명하는 것이라는 말씀. 나를 내어주고 남을 받아들여야할 때, 그래서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서로를 섬길 때 즐거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수도원에서의 기억과 수사님들을 생각해야겠다.

해가 뜨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잊을만 하면 돌아오는(게다가 길기까지;;) 기도시간도 쉽지는 않았다. 수도원은 가끔 오는 곳이지 살 곳은 못된다는(!) 수사님의 말씀에 많이 웃기도 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에~~ 좋으시면서~~ ㅋㅋ 공동체 안에서 기도하고 일하며 하느님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는 수사님들이 계시기에 우리도 밖에서 알게 모르게 그 기도에 힘입어 생활할 수 있고 수도원에 잠깐 들러 수사님들의 생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힘을 얻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이 넘치는 충만함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생활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신부님, 수사님, 봉사자님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4조를 비롯한 벗들 모두에게 감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