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으로 올라가는 야트막한 언덕 초입에는 성 가정상과 노란 국화꽃이 어서 오라고 반갑게 손짓하며 미소를 건넵니다.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진 아기예수님을 안으신 성모님과 요셉성인입니다. 조금 올라가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고딕양식의 성당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반겨줍니다. 100년 전에 지어진 성당이 당시에는 엄청 커보였을 것입니다. 성당을 에워싼 크고 작은 나무와 맑은 하늘을 살짝 가린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멋진 풍경을 연출해내며 나를 드라마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어쩐지! MBC드라마 미니시리즈 16부작 “러브레터”가 촬영되어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코스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답니다.

  풍수원 성당의 초기 신앙마을은 1800년대 초 박해를 피하여 경기도 용인의 신 태보(베드로)회장이 40여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8일 동안 주야를 걸어서 피난처를 찾아다니다가 숨어살기에 알맞은 이곳의 지리적 환경이 마음에 들어서 정착하고 화전과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공동체를 일구어냈다고 합니다.

  숨어살면서 약 80여 년간 성직자 없이 초기신앙을 다져온 선조들은 1887년 한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고 1888년에 본당을 설립하여 초대주임신부로 프랑스 르 메르(Le Merre)신부가 부임하였고 1896년 2대 주임신부로 한국인 정 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의 도움을 받아 1905년에 착공하여 1907년에 한국인 최초의 신부님에 의해 지어진 명동성당의 축소판 성당입니다.

  이 성당이 지어지기까지는 선조들의 피땀으로 얼룩진 역사가 숨어있습니다.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급급한 터에 산에 올라가 나무를 자르고 가마를 설치하여 벽돌을 굽고 2km 되는 거리를 벽돌을 지고 날랐으며 그 벽돌이 한 장 한 장 쌓여 지금의 풍수원 성당이 되었습니다. 선조들의 놀라운 신앙공동체 정신은 하느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하다 하겠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나라 초기신앙의 배경과 1800년대 초 당시의 풍수원 성당으로 들어가 봅니다. 우리의 신앙은 1784년 이승훈(베드로)에 의해 시작됩니다. 초기 신앙은 정약종 집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역할을 다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성조라 할 수 있는 이 벽은 성호 이익의 종손이며 당시 최고 천재로 알려졌고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이가환의 집안입니다. 이 벽은 또한 정약현의 처남이기도 합니다.

  정약현은 딸을 황사영에게 시집보내고 황사영은 정약용의 조카사위가 됩니다. 정약전은 신앙을 증거 하다 반역으로 흑산도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하였으며 첫 장 첫 번째 등장하는 것이 홍어에 대한 삭힘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젓갈문화가 발전하게 된 배경입니다. 아쉽게도 자산어보는 일부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정약용의 누나 정씨는 이승훈(베드로)의 아내입니다.

  정약종은 형제들에 비해 세례를 늦게 받지만(1786) 이 집안에서 성인이 세분 탄생합니다.  정약종은 큰 아들 철상과 같이 신유사옥(1801) 때 순교하고, 부인 유소사(체칠리아)와 둘째 아들 하상(바오로), 동정 딸 정혜(엘리사벳)은 기해박해(1839)때 순교하고 후에 103위 성인품위에 오르게 됩니다. 알기 쉽게 정리를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정재원 - 약현, 약전, 약종, 약용의 아버지이고,

이승훈 - 정재원의 사위, 정약용의 매부, 조선 최초의 영세자, 1784년에 중국에서

정약현 - 정재원의 첫째 아들로 첫째 부인 의령 남씨 소생임.

황사영 - 정약현의 사위, 황사영 백서 사건 : 배론 성지에 보관 되어 있음.

이   벽 - 정약현의 처남, 천주교 신앙을 연구한 조선 최초의 인물.

정약전 - 정재원의 둘째 아들로 둘째 부인 해남 윤씨(윤선도 집안)소생임.

             신유사옥(1801)으로 흑산도로 귀양 간 후 사망, 자산어보를 집필

정약종 -정재원의 셋째 아들로 둘째 부인 해남 윤씨 소생. 신유사옥(1801) 때 큰 아들

            철상과 함께 순교 함. 부인 유소사(체칠리아), 둘째 아들 하상(바오로),

            동정 딸  정혜(엘리사벳) 세분은 성인에 오르셨고  기해박해(1839)때 순교하심.

            주교요지(主敎要旨)교리서 한글 편찬,

聖유소사(체칠리아) - 정약종의 부인, 기해박해(1839)때 순교 함.

聖정하상(바오로)  -   정약종의 둘째 아들, 교황님께 올린 편지, 모방, 샤스탕 신부와

                               엥베르 주교를 모셔옴. 조선 최초 평신도 회장(명도회),

                               김대건, 최양업 신부를 마카오로 보내 유학하게 함,

                               기해박해(1839)때 순교함.

聖정정혜(엘리사벳) -정약종의 딸, 동정녀이며 최초 여신도회장,

                              오라버니와 신부님을 도움, 기해박해(1839)때 순교 함.

정약용 -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둘째 부인 해남 윤씨 소생. 신유사옥(1801) 때

             강진으로 귀양, 목민심서, 정조로부터 많은 신임을 받음. 외증조부가

             고산 윤선도 임.

윤지충 - 정약용의 외종육촌, 부모의 위패를 불태운 진산사건,

             전주에서 권상연과 더불어 조선 최초의 순교자가 됨.

이렇게 대단한 집안에서 신앙을 증거 하였기 때문에 오늘에 우리가 있게 된 배경입니다. 아래를 참고 하시면 더욱 이해가 쉽습니다.   

참고 : 1784년---이승훈에 의해 가톨릭이 들어옴.

         1801년 ---신유박해 (이때 정씨 집안 몰락)

         1839년 ---기해박해 (103위 성인 중 정하상 포함 54분이 성인 임)

         1846년 ---병오박해 (김대건 신부 포함 9분이 성인 임)

         1866년 ---병인박해 (베르뇌 주교 포함 23분이 성인 임)

                         이 외 나머지 성인은 박해년도 사이사이에 선종 하셨습니다.

  1800년대 초 신유박해를 피하여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 회장이 40여명의 신도들을 데리고 와서 이때부터 풍수원 공동체가 생기고, 성직자 없이 80여년이 지난 1888년에 르 메르 신부에 의해 최초로 풍수원 성당이 설립 됩니다. 1896년 2대 주임신부로 한국인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하여 1907년에 지금의 성당이 지어졌습니다. 정규하 신부님은 조선의 4번째 사제이십니다. 우리나라 사제 서품 순위와 현황을 보면!

참고 : 서품순위       서품년도       성   명       본   명               교구

              1           1845. 8. 17.     김 대건     안드레아          조선 교구

              2           1849. 4. 15.     최 양업     토마스             조선 교구

              3           1896. 4. 26.     강 도영     마르코             조선 교구

              4           1896. 4. 26.     정 규하   아우구스띠노   조선 교구

              5           1896. 4. 26.     강 성삼    라우렌시오        조선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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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제가 몇 분이나 될까요?

                                         생각보다 엄청 적습니다.

<<1890년 용산성당 안에 신학교를 설립 함.(배론 신학당에서 이전 함.)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은 마카오에서 수업 하시고 서품순위 세 번째 부터 용산성당 신학교를 나오신 분들이고, 후에 혜화동 신학교로 옮겨 짐. 위의 자료는 혜화동 가톨릭신학대학 기념관에 소장되어있는 전국 사제현황 자료를 촬영하여 제 홈피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병인박해(1866)를 피하여 전국을 다니면서 신앙의 씨앗을 심어왔고 신부님이 문경새재에서 병사하신 후, 40여년이 지난 1896년에 용산성당 신학교에서 세분의 사제가 나와 그중 정규하 신부님께서 풍수원성당에 2대 신부님으로 부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돌보심으로 정규하 신부님은 신도들과 같이 성당을 지으며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6개씩 좌우로 늘어선 기둥과 둥근 아치형의 천장이 조화를 이루고, 반원형의 벽돌로 둘러싸여진 제대 뒷부분에는 3개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은은히 빛을 발하며 나의 마음을 감싸줍니다. 주님께서 감싸주신 포근한 마음이 되어 마루바닥에 앉아서 기도를 드립니다. 

  성당 왼쪽으로는 성당만큼이나 고풍스런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유물 전시관입니다. 1912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원래는 사제관이었습니다. 지난 1997년에 대대적으로 수리한 다음 유물전시관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320점의 유물들 또한 대단한 유물들입니다.

  100여년 전 정규하 신부님이 쓰셨던 책상을 비롯해 당시 사용하던 제대 위 에 올려진 촛대, 십자고상, 미사 때 사용된 성합, 종, 성체강복 때 사용된 성광, 종부성사 때 사용된 가방, 묵주와 각종 신앙기도서, 사진 등 앞서 간 신앙 선조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유리 전시관에 진열 되어진 성물 하나하나에서 신앙의 향기가 배어나와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 올립니다.

  유리관에 보존된 성모성월 옛날기도문 일부를 옮겨보면!

“지인지존하신 천주여 네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원죄 없으신 동정마리아 복중에 조찰한 국면을 예비하신지라. 이제 성모의 전달함을 어여삐 보사 인자하신 마음을 발하여 우리로 하여금 청결함......!”이 기록되어 있고, 천주교요리문답 책에는 관면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범죄 한 후, 영혼의 구령에 대해서 쓰여 진 문답 형식의 책입니다. 취결례에 관한 책도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취결례(取潔禮)는 貞潔禮라고도 합니다. 주님봉헌축일(2월2일)을 옛날엔 성모취결례로 불렀습니다. 성서의 증언과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예식을 치르고 아기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탄 후, 40일 째 되는 날 2월 2일이 주님봉헌축일이 되는 이유는 당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산모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그 기간을 정해놓고서 부정한 여자로 간주하고 바깥출입을 금지하였는데 사내아이는 40일, 여자아이는 80일이며 마지막 날에 취결예식이 행해지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며 주님 봉헌이 이루어진 날, 예언자 시메온이 아기예수님을 안고계신 성모님을 보며 “주님을 뵈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고 하시고 예리한 비수에 찔리듯 마음에 상처가 클 것이다.” 라며 다가올 고통을 예언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유물전시관을 나와 아름다운 자연으로 들어가 십자가의 길을 올라갑니다. 십자가의 길 초입에는 팔을 벌리고 서계신 예수성심상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를, 그리고 모든 것을 팔에 안으려합니다. 예수님께 무거운 짐을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수님을 따라 풍수원의 골고타를 올라갑니다. 호젓한 산  길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살랑살랑 부는 가을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정말로 떨어지는 소리가 우수수로 들립니다. 나무는 가을바람에 바싹 마른 낙엽을 내맡기고 낙엽은 한 마리 새가 되어 조금 날다가 지친지 바닥에 내려앉습니다. 사방이 조용한 때, 귀를 기울여 낙엽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이라고 들려줍니다. 깊은 잠에 빠진 나무는 내년에 더 푸른 잎을 내려고, 또 이곳을 찾아올 교우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하려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조용히 올라갑니다. 밑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가 왠지 미안하게 들립니다.

  조금 올라가니 십자가의 길 옆에 모셔진 묘지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묘비를 읽어봤습니다. 벼슬이 높은 신분으로 신앙을 가지신양반이십니다. 참판공 동래 정씨 상묵(마두)와 정부인 청주 한씨(말다)의 합묘라고 쓰여있습니다. 마두는 마태오를, 말다는 말가리다를 지칭하는 옛날식의 본명입니다.

  남편은 1841년에 태어났고 정부인은 1843년에 태어났습니다. 이분들은 병인박해(1866)이전에 태어나서 환난과 핍박을 받다가 풍수원으로 피해 살면서 교우 촌을 만드신 분이라 여겨집니다. 프랑스 르 메르 신부님과 정규하 신부님을 모시고서 풍수원 성당이 완공되기 전 1906년에 선종 하셨습니다.  성당을 짓기 위해 고생하신 이곳 신앙공동체의 위력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분께 인사드린 후 계속하여 올라갑니다.

  싱그러운 공기 내음이 상쾌합니다. 바쁜 일상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어 더없이 상쾌합니다. 제14처까지 기도가 끝난 후 로사리오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대형 십자가와 그 앞의 작은 성모님이 계십니다. 이곳에서 교황님의 기도지향에 따라 주모경을 바친 후 동산을 산책합니다. 성모님을 빙 둘러 농구공 크기만 한 묵주 알을 땅에 박아 만든 동산입니다. 너른 공간인 이곳은 단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너른 공간입니다.  

  대형 십자가를 뒤로 하고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선조들을 생각하며 오솔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너무나도 조용한 이곳은 세상을 잊고 살기에 아주 좋은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건너편 산등성은 붉은 곰의 등처럼 보입니다.  바라보니 단풍이 기가 막힙니다. 온갖 나무들이 저마다 아픔을 토해낸 흔적이 제각각 색깔로 나타납니다.

  다시 예수성심상 앞에 모였습니다. 까떼나와 마침 기도를 드린 후, 지난 1차 피정 때 성모님께 올리는 편지를 썼던 글을 가져와서 불에 태워 하늘로 띄웁니다. 모두의 바램이 소원대로 잘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불에 타는 편지를 보며 단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참으로 진지합니다.

  휴식 시간이 되어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구가옥이 한 채 있어 들어가 봅니다. 그곳엔 마루에 많은 항아리가 놓여있고 돌계단엔 이끼가 끼어있습니다. 뒷채로 돌아가 보니 제일 예쁜 빠알간 단풍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까이 가기엔  너무나도 사나운 진돗개 두 마리가 지키고서 짖고 있습니다.

  풍수원 성당에서 제공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 식당 옆에 모셔진 성모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풍수원에서 신앙의 선조들과 레지오 단원들이 하루 피정을 마감하며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제2대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님

 

 

기도가 끝난 후 하산 길의 오솔 길이다.

건너 산의 단풍이 불곰의 등처럼 보인다.

예수성심상 앞에서 까떼나와 마침기도를 올리고 있다.

식사 후 단원들이 노력봉사로 설겆이를 하고 있다.  

버스에 승차 하기 전......

성지순례를 마치고 풍수원 성당을 떠나기 전...